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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혹은 믿는 것?

SEEING OR BELIEVING?
(Korea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8년 2월 4일 주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February 4, 20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 9).


베드로는 예수님을 절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그들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스펄전이 이렇게 말한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믿는 것는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펄전의 설교 중 하나의 제목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본문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스펄전의 설교를 간단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I. 첫째,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기 위해 성경을 많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를 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그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3년동안 따랐었습니다. 그는 예수와 함께 살았었습니다. 그는 예수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예수에 대해 설교했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친밀하고 가깝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유다를 친구라고도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은전 삼십 개에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목매어 지옥에 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보다 엄청나게 더 낫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도 역시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곧 예루살렘으로 가서 고난받고 죽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더라” (누가복은 18:34). 그들은 주님이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쉴 때까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0:22). 예수의 제자였던 도마는 그 후에도 여전히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3년을 함께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헤롯 왕도 예수를 보았지만,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도 그를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와 그가 행하신 기적들을 보았지만, 그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과 헤롯인들도 예수와 이야기했지만,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로 인해 먹고, 그의 베푸신 이적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를 본 사람들 중 거의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거의 아무도! 그건 정말 믿기 힘든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에 대해 쓴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복음 1:11). 예수를 본 사람 중 정말 얼마 안되는 사람들만 그를 믿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이 자리에 있는 몇몇 분들은 여러분이 예수를 볼 수 있다면 믿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한 무언가를 “느끼길” 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느낌”이나 언약이 있는 성경구절을 찾습니다. 당신은 느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의 약속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한 당신의 핑계이지요. 그것이 당신이 예수를 신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예수를 안믿는 것에 대한 핑계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구원받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보는 것는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약속을 반복해서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언급했던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예수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 중 대부분은 죽어 지옥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수 없이 보았음에도 절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이사야 53:3). 반스의 주석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구세주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로마 사람들로 부터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그랬다. 또 그의 죽음 역시 그러했다; 그렇기에, 예수의 이름과 위격은 널리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

사람에게 버림 받았으며… 이 표현 자체가 그 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세 단어가 인간이 구세주를 어찌 대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를 말하고 있다.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라는 말은 유대인에게 버림받고, 부자들에게 버림받고, 권력있고 배운 자들에게 버림받고, 모든 계급, 연령, 직위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던 슬프고 우울했던 역사를 표현한다.

주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멸시받았습니다. 인간의 멸시는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조금 집중했던 것과,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밤 예수를 대우했던 것에서 부분적으로 보여진다. 사람에게 거절 당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게 버림받으신… 우리 주는 결코 “적은 무리” 이상의 사람들을 데리고 있지 못하셨다. 심지어 그들은 “대부분 돌아가고 그와 더 이상 함께 걷지 않았다.” 몇몇은 밤에 예수께 왔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통치자들”과 높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에 대해 쌀쌀한 태도를 유지했다. 마지막에는 그의 사도들 조차 “그를 버리고 도망갔다.”

예수가 이 땅에 계실 때 그를 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경멸하고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다르게 살아왔습니까? 만약 당신이 회심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저들과 완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경멸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얼굴을 예수께로부터 숨기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예수를 보았지만 그를 거절한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를 보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목소리도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II. 둘째, 믿는 것은 보는 것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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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못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를 보지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그를 만지지도 못했는데, 예수를 믿은 것일까요? 위대한 개혁주의자 칼빈은 답을 줍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누구도 주께서 성령으로 바로잡으시고 그를 다시 만드시기 전까지는…스스로의 이해력으로 무엇도 할 수 없다.”

같은 성령께서 지금 당신에게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지금 – 비록 당신의 눈으로 예수를 볼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같은 성령께서 지금 당신을 예수와 만나게 하십니다 - 비록 당신이 그의 만지심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예수와 만나는 첫번 째 특징은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그를 사랑하는도다.” 예수의 사랑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찾아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때, 저희 친적들은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역시 무시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니? 그가 널 위해 뭘 했는데?”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저는 예수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도 나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모친에 대해 처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더러운 농담을 꾸며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사생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를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전 예수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절에 예수를 생각할 때 저는 그를 더 사랑했습니다. 저는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저는 예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싫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께 그리했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당하신 예수께 동정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저는 외로운 소년이었습니다. 저는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줄 부모님이 없었습니다. 저는 홀로 계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 그를 편안하게 해줄 친구가 없는 예수님 – 그리고 저는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예수님, 제가 당신을 사랑할게요!” 이것은 제 영혼을 승리케하는 예수의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날 그들은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각 절은 제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말씀과 함께 끝났습니다. “놀라우신 주의 사랑, 어찌 그럴 수 있나, 날 위해 나의 주님 죽으셨네.” “놀라우신 주의 사랑, 어찌 그럴 수 있나, 날 위해 나의 주님 죽으셨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 육체의 모습으로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나의 하나님을 거친 나무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놀라우신 사랑” 이것은 내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나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통해, 그리고 그 분을 향한 나의 사랑을 통해 나는 그 주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곳에 그 누구도 존 케이컨을 여성스럽다고 말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존의 담대한 성품을 존경할 것입니다. 존은 온 몸을 다해 예수를 거부했었습니다. 질문실에서 그를 움직이도록 내가 그에게 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께 포기해야한다는 생각은 영원토록 내가 그러지 않을 것 같아 나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예수는 내게 그의 삶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내가 그의 적이고, 그에게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았을 때, 날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그 생각이 나를 무너뜨렸습니다. 난 더이상 나 스스로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수께 나의 것을 양보하고 믿음으로 그 분께 왔습니다… 저에게 느낌은 필요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예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치없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 분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어야만 했는지요. 주님은 저에게 그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의 모든 것을 그 분께 드립니다… 주님은 저의 미움과 분노를 취하시고 대신 사랑을 주셨습니다.”

위대한 스펄전은 존 케이건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존을 아는 것 같이 글을 썼습니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외적으로 있어야하는 것들이, 결국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 이것은 예수를 생각하는 것, 이해하는 것, 영향을 받는 것인데, 이것은 만나는 것에 진정한 핵심이다.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연합의 진정한 의미가 되며, 만지는 것보다 함께 묶은 더 강한 유대감… 사랑은 구세주를 그 마음에 실제가 되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와 당신의 영혼 사이에서 사랑이 만드는 만남은 당신이 만지고 느끼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실제한다.” “비록 당신이 그를 보지 못했지만, 당신은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와의 만남에 대해 또 다른 핵심을 알려줍니다 – “비록 당신이 그를 보지 못했지만 믿는 것” “하지만 그를 믿는 것.”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보지 않고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비록 그를 보지 않았지만, 믿습니다. 당신은 기뻐합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베드로가 편지쓰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알던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알았습니다! “비록 당신이 그를 본적이 없지만, 믿고 기뻐합니다.” “비록 당신이 그를 보지 않았어도, 당신을 그를 믿습니다.”

헬렌 켈러는 완전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앤 설리반이라 불리던 여자는 헬렌 캘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저는 헬렌 켈러가 강연하는 것을 라디오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그녀는 날 때부터 완전한 시각, 청각 장애인이었지만, 헬렌 켈러는 예수를 믿었습니다! 당신도 그 분을 보고, 듣지 못할지라도, 당신 역시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당신을 그 분과의 만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은 모두 예수와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핵심입니다. 사랑과 믿음을 우리를 예수와 연합하게 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비록 당신이 그 분을 보지 못하지만, 당신을 그분을 믿고 기뻐합니다!”

우리 교회 반주자인 에미 자발라가의 말을 들어봅시다. 그녀는 현명한 여인입니다. 당신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신뢰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예수를 믿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는 그저 단어, 규범이나 그저 존재했었다고 알고는 있으나 나와는 동떨어진 누군가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대신에, 저는 어떤 경험이나 느낌을 찾았었습니다.
     어느 늦은 밤, 저는 갑자기 예수가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저의 죄의 무게 아래 신음하며 땀흘리고 계신 예수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통받으시는 예수를 [마음 속에서] 보았습니다. 저의 거절로 인해 못박히시고 피흘리신 그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예수를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확신을 느끼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매달렸습니다.
     하이머스 박사님이 예수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아가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을 때, 예수는 더욱 더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예수 때문에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성경구절을 들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10). 저는 예수가 저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불행함, 인생의 희망없음, 세상의 차가운 공허함, 짖누르고 있는 죄의 무게 등과 같이 내가 지나오고 경험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고, 예수의 필요함을 알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설교 후에 하이머스 박사님을] 보러 갔습니다.죄의 벽이 제 앞에 일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 내 마음의 악함, 마음 속의 악한 생각, 그리고 예수를 향한 끝 없는 거절감. 저는 이것들을 더이상 취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의 보혈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로부터 돌아서는 것 대신에, 잘못된 회심을 두려워하는 것 대신에, 실수하는 것 대신에, 내 스스로를 보는 것 대신에, 내 느낌을 점검하는 것 대신에, 이전에 내가 항상 해왔던 것 처럼 어둠 속에서 고심하는 것 대신에, 저는 믿음으로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의 존귀한 보혈로 저의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는 저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내셨습니다! 그는 저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는 이제 저의 영웅이요, 구원자시요, 저의 주인되십니다! 도움과 힘과 보호를 얻기 위해 저는 매번 예수께로 갑니다. 노래가 이렇게 말하듯이요, “자비가 나의 삶을 다시 쓰네./ 자비가 나의 삶을 다시 쓰네./ 나는 죄로 잃었던 영혼이었지만/ 예수가 나의 삶을 다시 쓰네.” 저는 다른 사람이 예수께 구원받았을 때 너무나 기쁩니다. 죄가 용서받았을 때 오는 평안과 만족에 대해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와 같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예수로부터 용서받은 경험을 하기 소망합니다! 이전에는 둔하고 생명력 없던 복음이, 지금은 살아있고, 예수의 대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의 마음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있습니다. 아들 예수께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단지 사도바울의 말처럼 이렇게밖에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9:15)!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예수를 알기 전까지 “기쁨”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많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왔습니다. 저는 제가 신뢰하던 사람들에게 실망해왔습니다. 저는 외로웠었고, 큰 슬픔을 경험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밤, 몇시간씩 걷곤 했습니다. 저는 친구 없이 외롭게 있는 것에 대한 “약하고 또 거친 슬픔” 을 느껴왔습니다. 저는 밤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수는 이 눈물의 시간에서 저를 건져내셨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 느낄 때에도 예수는 받아주셨습니다. “날 정케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만약 당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 사랑스런 노래를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나는 천가지 길을 헛되이 노력해봤네
나의 두려움은 가라않고, 나의 희망은 올라가네;
그러나 내가 필요한 것, 성경이 말하길,
항상, 오직 예수.

내 영혼은 밤, 내 마음은 쇠 –
나는 보지 못하네, 나는 느끼지 못하네;
빛을 위해, 삶을 위해, 나는 간청해야 하네
예수께 드리는 간단한 믿음 안에.

그는 죽었고, 그는 살았고, 그는 다스리고, 그는 애원하네;
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사랑이 있네;
죄인이 필요한 모든 것은
영원히 예수 안에 있네.
(“예수 안에” 제임스 프록터, 1913)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납득되지 않았어요. 당신은 사랑과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나는 그를 믿지 않아요. 당신의 논쟁이 나를 납득시킬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저는 이제 당신에게 경고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사랑과 믿음에 대해 달콤한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날이 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귀는 얼고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용서와 평화의 말씀은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지옥의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삼켜질 것입니다.

지금 제 말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에게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기 전에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십니다, “나는 너를 불렀으나 너가 거절했다.”

제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겁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믿으시겠습니까? 오늘밤? 저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예수를 믿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께 맡겨야만 합니다. 그 분의 능력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믿도록 많은 마음들을 열어오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예수께로 이끈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앉아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예수께로 이끄는 것을 택하십니다. 만약 그 분이 당신을 이끌지 않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오늘 밤, 당신의 마음에 말씀하신다면,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지금 그 분을 영접하십시오. 예수가 필요한 여러분 모두 지금 예수께 나아와 그 분을 믿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마음에 적용하실 때까지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에 말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당신이 지금 예수를 믿게 되길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 케이건과 에미 자발라가와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하신 것처럼 당신에게도 행하시기를 기도해왔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 우리 중에 택하신자를 구원하시길 원합니다. 당신이 예수께 나와 그 분을 믿고, 그의 모든 것을 속죄하시는 보혈로 영원히 구원받길 축원합니다. 아멘.


이 설교가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었다면 Dr. Hymers께서 알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이 Dr. Hymers에게 이멜을 쓸때 어느 나라에서 쓰는지 알려주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답장을 해줄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설교가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었다면 Dr. Hymers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말씀해 주십시요–mailto:rlhymersjr@sbcglobal.net (이곳을 클릭하십시요). 이멜을 쓰실때 어느 나라에서 이멜을 보내시는지 꼭 알려 주십시요. 여러분들은 Dr. Hymers에게 영어 외에 어떤 언어로도 쓰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가능하시면 영어로 써주십시요. 만약 우편물로Dr. Hymers에게 보내고 싶다면 그의 주소는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입니다. 여러분들은 또한 그에게(818)352-0452로 전화하실수 있습니다.

(설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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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의 독창가:
“In Jesus” (James Procter, 1913).


설교요약

보는 것과 믿는 것?

SEEING OR BELIEVING?

by Dr. R. L. Hymers, Jr.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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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첫째,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18:34;
요한복음 20:22; 1:11; 이사야 53:3

II.  둘째, 믿는 것은 보는 것이다! 아가서 2:20; 고린도후서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