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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NIRAM JUDSON의 회심 – 버마의 첫 선교사

(THE CONVERSION OF ADONIRAM JUDSON –
THE FIRST MISSIONARY TO BURMA)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2년 1월 29일 주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January 29, 2012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이 설교는 전기설교가 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Adoniram Judson (1788-1850)의 회심 이야기를 들려 줄 것입니다. 그의 회심은 교회 안에서 자라났던 젊은이들에게 특별할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교회 아이”로서 오래동안 투쟁하다가 회심하게 된 완벽한 예 입니다.

Adoniram Judson은 개척 선교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미국의 첫 파송된 선교사 중 한 분 입니다. 1812년 2월 19일, Adoniram 과 Ann Judson은 배를 타고 Cape Cod 시 Massachusetts 주 에서부터 인도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갖고 버마(지금은 미안마)로 향했습니다. 이전에 한번도 다른 선교사가 접근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 땅으로 향한 Judson들은, 첫 선교사로서 격렬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구속 과 가정위기. 그러나 Judson은 비종교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한다는 자신의 헌신 대해서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성경을 버마 언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어떻게 Adoniram Judson이 강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그의 삶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가 선교지를 떠나기 전, 제가 확고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가 젊었을 때 체험했던 진정한 회심 입니다. 이 설교는 Courtney Anderson의 책, To the Golden Shore: The Life of Adoniram Judson [금해안을 향하여: Adoniram Judson의 삶] (Judson Press, 1987 edition)의 비중을 많이 두어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Adoniram Judson, Jr. 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Adoniram Judson, Sr.이며 전통적인 회중을 위한 사역자 이셨습니다. 젊은 Adoniram이 제일 무서워 했던 사람은 그의 아버지 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순전한 무시무시함이 아들을 제일 무섭게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거의 유머가 없으셨고 잘 웃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처럼 단호하셨고 엄격하셨습니다. 사실 상, 젊은 Adoniram의 생각 안에는, 하나님과 그의 아버지는 거의 동일한 분 이셨습 니다.

Adoniram은 세 살 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계속 계속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 이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자신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 큰 New England교회의 위대한 목회자로서. 그의 소망은 자신이 얻지 못했던 명예와 성공을 아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Adoniram의 어린 시절 때에는 읽을 수 있는 온 책을 다 읽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도서 책들서부터 당시 유명했던 소설책과 대본들까지. 거기에다 그는 매우 적극적이었고 활동적이었습니다. 그가 열살 되었을 때에 이미 산수를 다 뛰었고, 기본적인 헬라어와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아주 [뛰어난] 아이야, Adoniram, 그리고 너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을 아버지가 기대한다.” 이러한 말들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너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을 아버지가 기대한다.”

그 당시 아버지의 교회 성도들은 끔찍한 분열을 겪고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온 가족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야 했으며 아버지는 다른 작으만 교회 담임목사가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doniram은 자신의 아버지를 크게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타협하지 않으시는 모습에.

Adoniram이 느꼈던 자신의 운명은 연설가나, 시인이나, 아니면 John Adams 처럼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무엇인가 책과 배우는 일에 연관성 있는, 무엇인가 자신을 명예롭게 하는 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시대들 속에 알려지는 일.

그는 늘 진정한 종교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위대한 사람이 동시에 될 수 있었습니까? 그가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에, 그의 마음속에 음성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아무리 그가 그곳에서 알려지지 않다해도, 무명의 시골 목사님의 명예는 영원에서 알려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웅 대해서 틀렸습니다. 세상은 심판 대해서 틀렸습니다. 무명의 시골 목사님의 명예는 사실 상 위대했습니다 – 얼마나 위대했으면 세상의 다른 성취에는 의미가 사라졌 습니다. 무덤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명예 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는 그의 생각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에서 곧장 앉아 있으면서, 이러한 생각들로 충격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그는 이러한 생각들을 지웠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속에서 통찰했던 이해가 너무 강했던지 그의 나머지 생에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Adoniram이 열 여섯살 때에는 대학교를 입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Adoniram 아버지는 Yale 대학 졸업자 이시지만, 자신의 아들을 그 학교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집에서 멀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또한 Harvard대학이 집에서 15마일 떨어져 있었지만, 그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진보적인 학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Judson목사는 자신의 아들을 Providence에 있는Rhode Island 대학교로 보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Adoniram은 “Brown University”로 알려진 대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Judson 목사는 그 학교가 성경을 믿는 학교인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Adoniram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Judson목사는 느꼈습니다.

Adoniram은 이미 라틴어, 헬라어, 수학, 천문학, 논리, 공개연설 그리고 도덕학을 알고 있어서 1학년보다는 2학년부터 대학교에 진입했습니다. 교수님들은 즉시 그를 알아 보았습니다. 한 학년이 끝날 쯤에는 학교총장이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Adoniram을 “매우 상냥하고 전도유망한 학생” 이라는 편지. Judon목사님의 마음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아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학교 학생들이 얼마 있지 않아 발견하게 된 것은, 그가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해도, Adoniram은 2주마다 있는 기도 모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대신 학교에서 불신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좋았습니다.

Adoniram은 머지않아, 자신보다 한 살이 많은, Jacob Eames라는 젊은이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Eames는 재능이 많고, 재치와 인기가 많은 친구였습니다 – 그러나 그는 자연신교 신자 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Adoniram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Adoniram은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서 Jacob Eames처럼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목사님께서 Adoniram이 자연신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은 그를 즉시 다른 학교로 옮겨 갔을 겁니다. Judson목사님은 자유주의, 일신론주의, 보편주의를 다 경멸했지만, 자연신교를 최악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자연신교는 성경 전체를 거부합니다. 자연신교가 믿는 신은 인간과 접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부합니다, 천국과 지옥도 믿지 않습니다, 또한 구속하는 그리스도의 보혈도 믿지 않습니다. Judson목사님은 Adoniram의 친구 Jacob Eames가 그의 아들을 끔찍한 불신으로 인도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Adoniram과 같이 지내던 Jacob Eames는 리더 이었습니다. 이 두 아이들은 같이 공부했고, 젊은 아가씨들과 같이 파티를 갔으며, 같이 이야기 했고, 같이 놀았습니다. 이 두 젊은이들은 기독교의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둘은 훌륭한 작가, 각본가, 그리고 배우가 되는 것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둘은 미국의 신 세계의 세익스피어나 골드미스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Adoniram의 아버지가 정을 들어 가르쳤던 그 모든 종교심은 다 헛수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Jacob Eames는 Adoniram을 그의 아버지의 옛 믿음으로부터 “해방” 시켰으며, 그를 자유케 하여 명예와 부를 쫓게 했습니다.

그러나 Adoniram은 쉽게 떨칠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은 그의 육 아버지를 외면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를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불찬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기가 끝나고 방학 때마다 집에 돌아올 때 그의 불신 대해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Adonirman은 자신의 학반에서 일등이 되었습니다. 그는 졸업생대표로서 뽑혔고, 졸업식 때 주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명예를 받은 즉시 자기의 방으로 뛰어가 이렇게 집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해냈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 A.J.” 졸업식 마무리 쯤에, 최고의 명예 자리에서, Adoniram은 졸업생대표로서 연설을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중 사이에 있을 때.

이렇게 하여, 열 아홉살 때, Adoniram은 자신의 필생의 사업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 그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매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불신자인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매번 부모님들하고 기도를 드릴 때 그는 위선자 처럼 느꼈습니다.

매주가 지나면서 그의 안절부절한 마음은 커져 갔습니다. 그는 Jacob Eames와 나누었던 야망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그 해 여름에 그는 집을 떠나고 New York으로 가기를 결정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연극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하고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무대를 위한 각본을 쓰는 것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New York이 미국에서 제일 죄악스러운 도시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현대판 소돔 말입니다. 부모님들의 생각에는 연극이 지옥의 구멍으로 넣는 타락과 죄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는 부모님들이 너무 마음이 좁은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머지않아 그는 New York으로 떠날 준비가 마쳤습니다. 부모님들의 반응은 꼭 그가 달 나라로 가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자신 스스로를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에 부모님의 규칙을 저버릴 수 있는 절정에 도달한 것을 부모님은 인식하지 못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공부하고 목사가 되라고 부탁했습니다. Adoniram이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들에게 무섭게 진실을 밝혔습니다. 부모님들의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성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실패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대성 통곡을 하면서 방마다 그를 쫓아 다녔습니다. “어떻게 네 어머니에게 네가 이럴수 있어?”라고 외치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Adoniram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악마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가 집에 있을 때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Adoniram은 이러한 상황을 육일 동안 지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을 타고 New York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 그가 꿈꾸었던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환영했던 사람들은 없었고 직장도 없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몇 주 동안만 머물다가, 매스껍고 상심한 상태로 떠났습니다.

해가 떨어질 쯤에 그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한 여관을 발견하여, 말을 마구간 안에다가 놓고, 여관주인에게 방을 달라 했습니다. 여관은 꽉 차 있었습니다. 방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여관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묵어야 할 방 옆에, 거의 죽어가는, 심히 아픈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좀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Adoniram은 답 했습니다, 옆 방에서 소리가 난다고 그가 안식할 수 있는 곳을 놓치긴 싫었습니다. 그에게 먹을 음식을 준 후, 여관주인은 Adoniram을 방으로 인도했습니다. Adoniram은 침대에 누워서, 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옆 방에서 오는 잔잔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왔다갔다 하는 발자국 소리, 삐걱 거리는 나무판 소리, 작으만 목소리, 끙끙 거리고 숨이 막히는 소리들. 이러한 소리들은 그를 너무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 그 남자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라도. New England에서 자라났던 Adoniram에게는 죽음은 보통 일 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입니다, 어느 나이 때에.

그에게 방해가 된 생각은 그 옆방 아저씨가 아직 죽어야 마는 것 이었습 니다. 혹시, 자기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반은 졸듯이, 반은 깨어 있듯이, 이러한 생각들은 그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게 되면 어떻게 맞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죽음을 영원한 영광으로 환영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불신자인, Adoniram에게는, 죽음은 텅빈 구덩이로서, 흑암으로, 최대한 소멸로, 최악은 – 무엇으로? 그가 무덤을 생각하면서 그의 육체는 기었습니다, 죽은 시체가 더디게 썩어져가는 생각, 묻혀진 관에서 느껴지는 흙의 무게. 끝나지 않을 시대들을 통해서, 이것이 전부였습니까?

그러나 그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러한 저녁의 생각들 대해서 비웃었습니다. 그의 대학교 친구들은 이러한 저녁의 생각들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 겁니까? 무엇보다더, 그의 친구 Jacob Eames는 어떻게 생각했었을 겁니까? Eames가 그를 비웃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치를 느꼈습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창문을 통해서 해빛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어두움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전날 밤 얼마나 연약하고 겁쟁이었는 지 믿어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는 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로 계단으로 내려 갔습니다. 그는 여관주인을 만났고 방비를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옆방 아저씨가 잘 계신지 물어 봤습니다. 여관주인이 답하기를, “아저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Adoniram 이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저씨가 누구인지 아세요?” 여관주인이 답했습니다, “오, 네. 그는 Brown 대학교에서 오 한 젊은이 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Eames 입니다, Jacob Eames.” 그의 제일 친한 친구 이었습니다, 그 전날 밤 옆방에서 죽게 되었던, 믿어지기가 힘든 Jacob Eames.

Adoniram은 그가 어떻게 그 이후 몇 시간을 견뎌 냈는지 평생 기억을 못 했습니다. 그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관을 한 순간동안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떠났습니다, 멍하게 말을 타면서. 한 단어만이 그의 생각속에 돌고 있었습니다 – “망함!” 죽음에서는, 그의 친구 Jacob Eames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 완전히 망하게 된 것입니다. 죽음에서 망함. 친구들에게, 세상으로 부터, 미래로부터, 망하게 된 것입니다. 공중에 연기가 사라지듯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Eames 스스로의 관점이 사실이었다면, 그의 생명이나 죽음도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에 Eames가 틀렸다면은? 만약에 성경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고 하나님이 사실이었다면은? 그러면은 Jacob Eames는 영원히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순간. Eames는 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Eames가 회개 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Eames는 이미 지옥의 불과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다 망해 버린 것입니다, 영원히 망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Adoniram의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의 제일 친한 친구가 그 옆 방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란 것을 Adorniram은 생각했습니다. 우연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주권으로 이러한 사건을 마련했다는 것을 그는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Adoniram은 성경의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인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달리는 말의 방향을 틀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집을 떠났을 때의 여행은 5주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5주의 출발점에서 시작되었던 부모님들의 통제를 저버린 것이 영혼을 뒤 흔드는 내적인 경련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이제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혼의 대한 죽음의 두려움. 그는 깨어난 죄인으로서 집에 돌아 갔습니다.

그 당시 두 목사님께서 아버지의 집에 와 있었습니다. 두 목사님이 추천 하시기를 Adoniram이 새로운 신학 대학원으로 접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0월달에 Andover Theological Seminary로 입학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회심하지 못 한 상태 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사역자 후보자의 자격이 아니라. 거기서 학생으로서 그는 성경을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11월달에는 그의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소망하던 회생시키는 성령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12월 2일 날 – 그가 평생 잊지 못할 날 – 그는 회심을 하게 되었고 그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성공의 꿈들로부터 영원히 몸을 돌려, 간단히 자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게 해 드릴수 있습니까?”

이 회심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Adoniram을 버마의 첫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지에 도착하면서, Adoniram Judson은 침례교인이 되었습니다, 헬라어 단어 “baptizo”를 공부하면서. 그 이교도 땅에 선교사가 한 명도 없었을 시기에 그는 버마로 향했습니다. 격렬한 어려움을 당하면서, 구속과 가정위기, 그리고 두 아내와 몇명의 아이들까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Adoniram Judson은 망하게 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한다는 자신의 헌신 대해서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버마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Adoniram Judson 처럼, 진정한 회심을 체험해 온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를 우리가 기도합니다. Dr. John R. Rice (1895-1980)는 Adoniram의 회심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는 찬송을 작사 하셨습니다.

나는 즐거움의 길을 걸었네, 나는 이 땅의 즐거움을 위해 수고했네,
   그러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평화는, 오직 예수 안에서 발견 했네…

나의 자랑스러운 선의는 나를 실패하였네, 고통스러운 죄는 치유가 없었네,
   하나님의 영이 승리케 해 나의 죄를 예수님께 맡겼네…

오래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거부했고, 그분의 영은 불렀지만, 외면했네,
   회개하면서 나는 간구했네, 예수님께, 존귀한 예수님에게.
나의 죄들은 다 용서함 받았네, 죄의 쇠사들은 풀렸네,
   그리고 나의 전심은 드렸네, 예수님께, 오직 예수님께.

오 그리스도, 끊임없는 사랑으로, 축복이 영원히 넘치네,
   나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나의 예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네.
나의 죄들은 다 용서함 받았네, 죄의 쇠사들은 풀렸네,
   그리고 나의 전심은 드렸네, 예수님께, 오직 예수님께.
(“Jesus, Only Jesus” by Dr. John R. Rice, 1895-1980).

다 같이 일어나셔서 찬송책 5번을 부르겠습니다, “Almost Persuaded.”

지금 믿기에 “거의 설득됬네”; “거의 설득됬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에;
지금 보기에는 어느 영혼들이 말하네, “성령이여, 당신의 방법으로 가소서,
더 편리한 날에 제가 주님을 부르겠습니다.”

“거의 설득됬네,” 추수는 과거네! “거의 설득됬네,” 죽음은 끝에 오네!
“거의”로는 얻을 수 없네; “거의”는 실패하는 것이네!
슬프다, 슬프네, 그 쓰라리는 울부짖음, “거의” – 그러나 잃어버렸네.
    (“Almost Persuaded” by Philip P. Bliss, 1838-1876).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You may email Dr. Hymers at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 – 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대표기도 하셨음.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Speak, Lord, in the Stillness” by E. May Grimes, 1868-1927;
altered by the Pas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