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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 진정한 회심의 한 타입
(창세기 설교 62번)

(ABRAHAM – A TYPE OF REAL CONVERSION)
(SERMON #62 ON THE BOOK OF GENESIS)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1년 7월 3일 주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July 3, 201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아브람의 구십 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Dr. A. B. Simpson (1834-1919) 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의 믿음은…확실히, 온 시대의 전형적인 믿음 입니다. 이로부터 조상들이 부르기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로마서 4:11” (A. B. Simpson, D.D., The Christ in the Bible Commentary: Old Testament, Wing Spread Publishers, 2009 reprint, p. 78).

저는 Dr. Simpson하고 이 요점 대해서 동의 합니다. 아브라함은 “온 시대의 전형적이고 [중심이자 모범인] 믿음의 사람 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12). 오늘 저의 설교 주제 입니다, “아브라함 – 진정한 회심의 한 타입.” “믿음의 발길”로서, 스펼전이 말했던 것을 제가 의미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과정을 통해 믿음으로 나아 갑니다…보통 우리는 단계적으로 믿음에 도달 합니다” (C. H. Spurgeon, Around the Wicket Gate, Pilgrim Publications, 1992 reprint, p. 57).

창세기에서 조상 아브라함의 진정한 회심을 보여주는 세 말씀 구절을 저는 이 설교 안에서 전할 것입니다.

I. 첫번째, 아르라함의 부르심.

다 같이 첫 본문말씀에 펴시고,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 7:2-3).

하나님은 아브람을 흑암에서부터 부르셨습니다, 갈대아의 우르 이방 우상숭배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1절에 기록되기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창세기 12:1). 그 대신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우상숭배를 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테라와 그의 조카 롯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보다, 하란에서 멈추고,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때까지 머물었습니다 (창세기 11:31-31 참조). Arthur W. Pink가 말하기를, “아브람의 부르심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믿음의 삶의 시발점 입니다. 첫 요구는 세상과 분리 입니다…[하나님의]부르심에 전적으로 순종하기 전 아브람이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세상과 진정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불가능 합니다” (Arthur W. Pink, Gleanings in Genesis, Moody Press, 1981 edition, pp. 141, 143, 144).

오늘 날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본보기 입니까! John Bunyan의 Pilgrim’s Progress 에서는 아브람 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는데, “멸망의 도시”를 , 자신의 가족과 함께 떠나야 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향한 순례를 걷기 위해서.

하나님은 “너희를 어두운 대세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9).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7-18). 이것은, 당연히, 수도원에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니면 세상과 접촉을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5).

아브람 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많은 청년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청년들은 두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주 중에는 방황하는 친구들하고, 주 말에는 기독교 친구들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왜 회심하지 않은 채 있는 지를 궁금해 합니다! 이유는 간단 합니다. 이들은 Fanny Crosby (1820-1915)와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Take the world, but give me Jesus” [세상을 가져가고 나에게 예수를 주소서]. 부르세요!

세상을 가져가고 나에게 예수를 주소서,
   모든 즐거움을 이름 하나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영원의 세월 동안 동일하리라…
(“Take the World, But Give Me Jesus” by Fanny Crosby, 1820-1915).

여러분은 이러한 자세를 가지셔야 합니다, “세상을 가져가고 나에게 예수를 주소서,” 아니면 여러분은 회심을 전혀 하지 못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4). 아브람 처럼, 오직 실제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많은” 사람들 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멍하는 귀 소리와 같습니다. “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4). A. W. Pink가 표현했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순종하기 전 아브람이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Pink, ibid., p. 143).

II. 두번째, 아브라함의 정당함.

다같이 우리의 두 번째 본문말씀을 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5:6. 다같이 일어나셔서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저는 아브라함 삶의 모든 세미한 부분들을 이 설교들 통해서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세 말씀들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로마서 4:12).

여기, 창세기 15:6절에서는, 아브람이 의롭게 정당함을 받는 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구절은 극히 중요합니다. 신양성경에서 세번 씩이나 인용 되었습니다, 로마서 4:3; 갈라디아서 3:6, 그리고 야고보서 2:23.

많은 성경주석들에서 기록되기를 말씀 오절을 가리켜 아브람은 언약을 믿어 의인으로서 칭의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창세기 15:6절 전부터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있어서 충분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8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아직은 구원을 얻지 못한 상태]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브리서 11:8).

그러나 창세기 15:6절에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전부터, 아브람은 주님의 존재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흐릿한 믿음으로서 주님을 머뭇거리며 순종했었습니다, 바로 스펄젼이 불렀던 “믿음 전 믿음” 입니다 – 바로, 거듭나거나 회심을 하기 전 깨달음이나 조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5:6절에는 새로운 무엇이 우리에게 주어 집니다. 아브람은 “언약”만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그는 언약만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C. F. Keil은 히브리 원어를 이렇게 옮겼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Dr. Keil이 또한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은 단순히 찬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사실 상 주님을 신뢰했다고 합니다, “내적인 확신으로서, 개인적으로, 인격의 존재에게 자기 자신을 드리면서… ‘주님을 믿으니,’ 그분을 신뢰하기 위해서” (C. F. Keil, Ph.D.,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in Ten Volume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3 reprint, volume I, p. 212).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대해서 믿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으셔서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의롭다는 칭의함을 받으셔야 합니다. 로마서 4장에서 말씀하듯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3-5).

여러분이 “이를” 믿을 때에 여러분의 믿음은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5).

그 날 아브람이 이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창세기15:18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날에[‘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동일한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요한복음 3:18절에서 우리는 이 단어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요한복음 3:18). 헬라어로 “를”은 “eis” 입니다. 이 글자의 의미는 “한 장소나 물건 안으로 움직이는 것” (Zodhiates) 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예수님 안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또 다시 성경에서 기록되기를, “가로되 주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헬라어로 “를”은 “epi” 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upon” [뭐 위에] 입니다 (Strong). 여기서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 위에 자신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문자 그래도 “주 예수 그리스도 위에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여러분의 죄를 용서함 받기위해, 그리고 의인으로서 칭의함을 받기위해, 여러분은 반드시 예수님 “안으로” 이끌림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 그리고 그분을 “토대로 삼아” 믿으셔야 합니다. 불타는 빌딩에서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자신을 던져 밑에 소방관들이 펼처 놓은 그물 “안으로” 그리고 “위에” 향하듯이 예수님께 자신을 던지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고 “위에” 여러분 자신을 던지세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바로 그 날 아브람이 행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나의 믿음이 쉴 곳을 찾았네.
   기구나 신조가 아니라;
영원하신 그 한분을 내가 신뢰하네,
   나를 위한 그분의 상처가 변명하네…
(“No Other Plea” by Lidie H. Edmunds, 1851-1920).

제가 Dr. John MacArthur의 “성육신 양자 설”의 대해서와 예수님의 보혈설 관해서 동의 하지는 않지만, 그의 창세기 15:6절의 관한 주석은 동의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서 재생 [다시 태어남] 했습니다!” !” (The MacArthur Study Bible, Word Bibles, 1997, p. 36; note on Genesis 15:6). 그는 이 요점에 대해서 정확히 옳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세번째 말씀 구절에서, 아브람의 관한 한 가지 요점이 더 있습니다.

III. 세번째, 아브라함의 성화.

하나님은 아브람을 적절하게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재생 시켰고 정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성화된 삶을 살으라고 부르셨습니다. 다같이 일어나셔서 창세기 17:1절을,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여러분은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스펄젼은 창세기 17:1절의 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아브람의 삶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의 부르심부터 [시작합니다],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부터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에서 하나님께 택정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 그는 정당함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동일한 주제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장에서 [창세기 17] 우리는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성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주님이 사용하고자 하는 도구로서 쓰임 받기위해. 모든 [적절하게] 부르심을 받은 자 들은 정당합니다, 그리고 모든 정당함을 받음 자들은 성령님 으로부터 성화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축복들의 순서를 알리고자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성화 아니면 신성화 대해서 예기하고자 할 때, 이것들이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미리 밟아야 할 돌판으로서 상승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 앞에서 성화되었다는 척을 헛되게 행합니다…“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사람들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확고하게 인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의 생명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하나님을 섬김다는 이들의 모든 말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답변 될 수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섬지기 못하리라.” 저는 신성화 대해서 예기하고 있습니다, 첫 우선순위 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우선순위도 아니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이러지 못하면 온 거룩함의 근본이 되는 은혜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장합니다. 거룩함은 꽃이 아니라 뿌리 인것을 기억하세요; 거룩함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이루는 구원인 것을. 사람은 그의 거룩함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가 구원을 받앋기 때문에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하나님께 신성화 되는 것은 부르심과 성화가 따릅니다 (C. H. Spurgeon, “Consecration to God – Illustrated by Abraham’s Circumcision,” The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Pilgrim Publications, 1976 reprint, volume XIV, pp. 685-686; on Genesis 17:1-2).

거짓된 회심을 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 그리고 온전…되지” [upright, sincere, Scofield] 못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진정한 회심을 한번 도 경험하지 않은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직 완전하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 그리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으로서 정당함을 받은 자들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서 성장하여 남자나 여자나 그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간증”에서 “옳은 말로서만” 한 사람들은, 이름으로서만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고, 더욱더 악화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옳은 말”을 배우지 마세요! “옳은 감정”을 갖지 마세요. “옳은 말”과 “옳은 감정”은 여러분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전혀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구하세요! 오직 예수님 한 분께서만 여러분을 의롭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갈수록 여러분에게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로마서 5:1-5절에서 사도 바울보다 더 명백하게 표현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1-5).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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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로마서 4:1-5.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No Other Plea” (by Lidie H. Edmunds, 1851-1920).


설교 요약

아브라함 - 진정한 회심의 한 타입
(창세기 설교 62번)

(ABRAHAM – A TYPE OF REAL CONVERSION)
(SERMON #62 ON THE BOOK OF GENESIS)

by Dr. R. L. Hymers, Jr.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아브람의 구십 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로마서 4:11, 12)

I.   첫번째, 아브라함의 부르심, 창세기 12:1; 사도행전 7:2-3;
베드로전서 2:9; 야고보서 4:4; 고린도후서 6:17-18;
요한복음 17:15; 마태복음 22:14.

II.  두번째, 아브라함의 정당함, 창세기 15:6; 로마서 4:12;
히브리서 11:8; 로마서 4:3-5; 창세기 15:18; 요한복음 3:18;
 사도행전 16:31.

III. 세번째, 아브라함의 성화, 창세기 17:1; 로마서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