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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 BELL과 ‘창세기 시’

(ROB BELL AND THE ‘GENESIS POEM’)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1년 5월 22일 주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May 22, 2011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로마서 5:18).


또 다시 저는 Rob Bell의 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Love Wins (HarperOne, 2011), 왜냐하면 지난 몇 주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Bell이 이 언급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제일 단단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녹여 버릴 것입니다” (p. 108), 그리고 그는 호의적으로 언급하기를 “역사는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지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내며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p.109). 그가 언급했던 대상들은 Origen (185-254 A.D.)를 포함합니다, 카톨릭 교사로서 자신을 거세했으며, 그리고 지옥에 있는 모든 자들이, 마귀를 포함해서, 어느 날 구원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 이었습니다. Origen은 자신의 가르침 때문에 카톨릭교에서 이단자로 비난 받았었습니다. Mr. Bell이 말하기를 Origen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Love Wins, p. 107).

그렇지만 Bell의 그릇된 개념들의 뿌리는 창세기를 잘 못 이해한다는 점과,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을 갖고 창세기의 대한 잘못된 언급에 근거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창세기 대해서 잘못된 이해가 있으시면, 다른 모든 것들도 잘못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대해서 Rob Bell이 언급한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시작하는 창세기 시 에서는, 삶 이란 고동적이며, 점진적이여, 발전적이며, 역동적인 현실 입니다… 왜냐하면 상황들이, 최대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Love Wins, ibid., p. 44).

창세기를 묘사하기에, 얼마나 이상하고 뒤틀린 방식입니까! 여러분, 그냥 “시” 뿐입니다. 실질적인 역사가 아니에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의 묘사가 아닙니다. 그냥 “창세기 시”에요. 제가 확신하는 것은 그가 이러한 용어를 풀러신학 대학원에서 배웠을 겁니다, 몇 년전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곳이지요. 그러나, 다시 본점으로 돌아가서, 창세기 에서는 “삶 이란 고동적이며, 점진적이며, 발전적이며 [?], 역동적인 현실 입니다” (ibid.). 저는 이 묘사를 웃음거리로 봅니다. 사실은 제 사무실에서 이 기사를 읽었을 때 큰 목소리로 웃었습니다! 왜냐고요, 창세기는 이러한 유형이 전혀 아닙니다! 사실 상, 창세기는 제일 슬픈 책 중 하나이며, 최고의 절망의 책 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동산에서부터 황폐한 세상으로 내어 쫓아 졌습니다. 그들의 첫 아들은 동생을 살인했습니다. 가인의 아들은 복수심과 살인으로서 한 도시를 세웠습니다. 아담은 죽게 되었습니다. 셋도 죽었습니다. 에노스도 죽었습니다. 가이난도 죽었습니다. 마할랄렐도 죽었습니다. 야렛도 죽었습니다. 에녹도 죽었습니다. 므드셀라도 죽었습니다. 라멕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그 이후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는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5). 노아와 그의 아들들도 죄를 범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항하기 위해 바벨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창세기 11:8).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살았다가 죽었습니다. 수 많은 실패를 경험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멸망되었습니다. 롯은 자신의 딸들과 근친상간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죽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었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들은 죄를 짖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죽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키웠던 야생적인 아들들은, 요셉, 그들의 동생을 이집트 노예로 팔았습니다. 야곱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는 이러한 어두운 글들로 끝을 냅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로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50:26).

Dr. J. Vernon McGee는 말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세기는 막을 내립니다. 창세기는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입관으로 끝 납니다. 인간의 가족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하나님의 창조 안으로 죄가 침입한 것입니다” (J. Vernon McGee, Th.D., Thru the Bib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81, volume I, p. 198; comment on Genesis 50:26).

어떻게 Mr. Bell은 삶이 “점진적이며, 발전적이며…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창세기를 아름다운 “시”라고 부룰수 가 있습니까? (Love Wins, p. 44). 삶은 점진적이지 않았습니다, 퇴행하고 있었습니다! 삶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삶이 “향했던” 곳은 무덤 이었습니다! 창세기는 “이집트에서…방부 처리를 한 관 안에” 죽은 사람으로 끝을 내립니다!

그리고 Mr. Bell의 실수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의 의미를 완전히 벗어 났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어둡고, 우울하고 절망적 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담이 주먹을 하나님 얼굴 앞에서 흔들며 의도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이 이 요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성경 나머지를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로마서 5:18).

Rob Bell은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책은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를 Rob Bell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5:12).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를 Mr. Bell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5:18).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를 Mr. Bell은 이해하지 못 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Mr. Bell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5:22). 이렇기 때문에 인간이 “허물로 죽었”다는 것을 Mr. Bell은 믿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2:5). 온 인류가, 지옥에서도,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결정”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Bell 이 한다는 사실 대해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아담 안에서 인류가 멸망 되었다는 것을 Rob Bell은 믿지 않습니다. 온 인간들이 “진노의 자녀”인것을 그는 믿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3). 인류가 죄의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그는 믿지 않습니다, 인류가 얼마나 눈이 멀어 있으며 황폐하며 부폐되어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을 것입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11).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나 지옥에서도! 아무도! 네! 맏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11).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한복음 6:44).

Mr. Bell이 생각하기를 인간은 “선택하는” (그가 선호하는 단어) 새 처럼 자유스럽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선택이 있습니다” (Love Wins, p. 72). 그가 창세기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는 우리가 “이러한 자유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그에게는 단순한 “시” 뿐입니다 (Love Wins, p. 44).

Rob Bell의 입장은 호칭이 있습니다. 4세기 후 Pelagius라는 수도자의 이름을 따서, 펠라기아우스주의[Pelagianism] 입니다. 일신론 보편 구제설 주의자들은 그의 보편적인 관점을 가리킵니다. Pelagius의 이론은 “아담의 죄가 그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순결한 상태로 창조되었고…아담의 죄의 영향이 그의 후손에게만 끼치게 된 것이 나쁜 사례일 뿐 입니다” (H. C. Thiessen, Ph.D., Introductory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3 edition, p. 260).

펠라기아우스주의가 또한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어느 때에나 그리스도를 선택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택함으로. 이 개념을 Rob Bell은 명백하게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간에, 지옥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개념, “선택”이나 “결정”을 통해서. 이 개념은 아주 극한 “결단주의”의 형태 입니다. 사실 상, 펠라기아우스주의는 “결단주의”의 다른 호칭 입니다. 우리 교회들을 감염시켰고 크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결단주의”는 최후로 보편 구제설로 인도하게 됩니다, Bell의 경우처험, 아니면 영혼 절멸설로, 여호와의 증인처럼. 여기 클릭 하셔서 저의 설교를 읽으세요, “Rob Bell과 여호와의 증인의 비교.” 여기 클릭 하셔서 “결단주의”의 관한 책을 읽으세요 – 제목, Today’s Apostasy: How Decisionism is Destroying Our Churches(오늘날의 배교: 얼마나 결단주의가 우리 교회들을 파괴하고 있는가).

Bell이 예기하기를, “우리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선택이 있습니다” (Love Wins, p. 72). 이것은 순수한 펠라기아우스주의 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가, Puritan, Bunyan, Whitefield, Wesley, 아니면 Spurgeon, 이들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펠라기아우스주의는 신교도 아니면 침례교 선조로부터 주장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다 할때까지 이들은 펠라기아우스주의 와 보편 구제설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어습니다 – 그리고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로마서 5:18).

첫 대각성 운동 때 Dr. Isaac Watts의 찬양중 하나가 얼마나 로마서 5:18절을 간단하게 그리고 성경적으로 설명하는지 들어보세요,

아담으로부어 오염된 우리의 피가 흐르네,
   독이 다스리고 있네;
죄의 의지적인 노예의 상태로부터
   우리가 맞서게 하소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우리는 단절된 삶을 사네,
   그리고 거리를 좋아하네;
지옥과 죄로 인도하는 길로
   우리는 빨리 달리네.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깨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네;
사단의 끔찍한 원인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외면하네.
(“Our Unregenerated State” by Dr. Isaac Watts, 1674-1748;
   to the tune of “O Set Ye Open Unto Me”).

여러분은 이러한 느낌을 받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담의 “부폐한 피”를 물려 받았다는 느낌을 받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죄의] 독물이 다스리는” 느낌을 받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의지적으로 죄의 [노예]라는” 느낌을 받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고 싶은 느낌, 하나님이 여러분을 봐라 보거나 여러분 가까이 계신것을 싫어하는 느낌을 받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거리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니” (창세기 6:3) [킹제임스흠정역].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확신시키는 않는 날이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살아 계실 동안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 중 몇 분은 벌써 그 날을 맞이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로마서 5:18).

여러분은 어떻게 계속 여러분의 상태로 살아가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아담의 독물의 피가 여러분의 핏줄 사이로 흐르면서 살아가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은 의지적인 죄의 노예로서 살아가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은 끔찍한 지옥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주무실 수 있으십니까?

네, 여러분이 큰 죄를 이미 저지르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특별한 죄가 여러분의 생각에서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이 죄의 기억이 여러분을 가끔식 신경쓰게 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검이 더 깊게 찔러 쪼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여러분은 반드시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셔야 합니다 – 선천적으로 여러분이 죄인라는 것을 –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러분은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 그리고 여러분이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신념을 체험하셔야 합니다 – 여러분의 그릇된 행위들 보다 더 – 여러분의 본성이 그릇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낌을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용서함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낌을 받으셔야 합니다 – 바로 여러분은 새 마음과 새 본성이 필요 하다는 것을 –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새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윗이 체험했던 느낌을 반드시 체험해야 합니다. 다윗이 외쳤던 것처럼, 여러분도 반드시 감동을 받아 외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시편 51:10).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혈과,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여러분을 예수님께 인도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6:44 참조). Dr. Watts께서 지으신 찬송가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야 합니다. 제가 이 찬송을 조금 변경했습니다,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면서. 여러분의 찬송가 8번 입니다. “O Set Ye Open Unto Me”의 멜로디로 부릅시다.

영광과 은혜의 전능하신 하나님, 내가 인정합니다,
겸손한 수치심으로, 나의 타락된 인류가 얼마나 악한지, 그리고 첫 조상의 이름이.

아담으로부터 오염된 나의 피가 흐릅니다, 이젠 독이 나를 다스리네; 죄의 의지적인 노예의
상태로부터 내가 맞서게 하소서.

날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깹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거부합니다; 사단의
끔찍한 원인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외면합니다.

나는 단절된 삶을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그리고 거리를 좋아합니다; 지옥과 죄로
인도하는 길로 나는 빠르게 다닙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 올립니다, 자신의 영을 보내사
반항적인 죄인을 가까이 인도하사, 그리스도의 적을 친구로 만드십니다.

이러한 반역자들이 회복될 수 있으며, 이렇게 눈먼자가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하소서, 오 주님, 그리고 신성한 그분의 피를 느끼게 하소서.
   (“Our Unregenerated State” by Dr. Isaac Watts, 1674-1748;
     altered by the Pastor; to the tune of “O Set Ye Open Unto Me”).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You may email Dr. Hymers at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
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로마서 5:12-19.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Lord, I am Vile, Conceived in Sin”
(by Dr. Isaac Watts, 1674-1748; from Psalm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