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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의 멸망과 중생

(ON THE RUIN AND REGENERATION OF FALLEN MA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1년 3월 6일 주일 아침,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March 6, 2011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 3:6-7).


“육”은 아담으로부터 왔습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에게 중생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인류의 타락을 이해하기 전 – 그리고 부폐된 죄인으로서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기 전, 이 질문을 적절하게 답 할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이 주제들을 갖고 무엇을 가르치는 지 대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타락함을 먼저 느끼지 않는 이상 중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인류의 타락과 인간의 자연적 상태 대해서 예기하고 있습니다.

I. 첫번째, 인류의 원상.

첫 남자와 첫 여자는 거룩한 모습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죄 없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이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 처럼 창조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 이십니다. 인간의 혼도 영 입니다. 영의 본질적인 속성들은 지성 (이성), 감성 (양심), 그리고 의지 입니다. Dr. Charles Hodge 가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영 이십니다. 영의 본질적인 속성들은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 입니다...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으로서 자신의 속성들을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닮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일 뻔했습니다” (Charles Hodge, Ph.D., Systematic Theology, Eerdmans, 1946, volume II, p. 97).

본래의 인간은, 그러므로, 의롭고 거룩했습니다. 전도서 7:29절이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또한 창세기 1:31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것은 인간을 포함하여, 인간이 [죄악스럽거나 아니면] 도적적으로 완벽하지 않았다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Henry C. Thiessen, Ph.D., Introductory Lectures on Systematic Theology, Eerdmans, 1949 edition, p. 221). W. G. T. Shedd 가 언급하기를 인간은 거룩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거룩함은 무죄 이상 입니다…인간은 부정적으로만 청순하지 않았고, 긍정적으로 거룩 했습니다. 인간이 재생하려고 하면은 [타락하기 전] 아주 깨끗한 상태의 조건에서부터 시작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움과 진정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후,’ 에베소서 4:24” (W. G. T. Shedd, Ph.D., Dogmatic Theology, Scribners, 1889, volume II, p. 96). Dr. John L. Dagg가 언급하기를, “얼만큼 첫 [남자와 여자]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원래의 청순함과 [거룩한] 상태로 있었는지 우리는 알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동안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책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교감]은 존재 했었습니다…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형성되었던 우리의 첫 부모님들의 거룩하고 행복한 상태를 우리는 유익함으로 뒤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한, 좋은 영향으로, 어떻게 타락을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생각하는 것도]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께서 기부하신] 회복의 거룩한 계획을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John L. Dagg, D.D., A Manual of Theology, Southern Baptist Publication Society, 1858, pp. 141, 143-144).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첫 아담은 인류를 죄 안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자신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속하러 오셨습니다.

II. 두번째, 인류의 타락.

첫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온 자손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지키지 않을 때, 형벌이 있겠끔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Dr. Dagg가 말했습니다, “속지 마세요; 하나님은 조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순종의 시험은 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실상은 [아담의] 죄를 더욱더 용납할 수 없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은 증명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사로 바쳤을 때 [그가] 꿋꿋히 힘든 시험을 통과하면서; 그래서 아담의 위대한 죄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죄를 지을 때, 쉽게 피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Dagg, ibid. p. 146). 아담은, 사실 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자신의 주먹을 흔들은 것입니다. Dr. Dagg가 언급하기를, “그가 금지된 과일을 먹은 것보다 더 큰 악을 [아담은 저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Dagg, ibid.).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입니다,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저항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멸망시키면서, 그리고 자신의 온 자손들의 영혼까지도.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롤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9).

1599년도의 제네바 성서 [Geneva Bible] 에서는 로마서 5:19절의 관해 각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남성 [아담과 그리스도] 은 두…뿌리의 쎄트 입니다, 그러므로 한 뿌리로부터, 자연적인 죄가 낳았으며, 다른 뿌리로부터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돌출되는 은혜의 의로움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발자국을 따라서만이 죄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상속되여 우리가 부패된 것입니다.”

III. 세번째, 인류의 현재 상태.

Dr. Dagg가 언급하기를, “우리의 첫 부모님들의 불순종의 의하여 [결과로 나타난] 악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감금되지 않았고, 자손들에게 까지도 [내려 물리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형상이 [죄로 말미암아 상실] 되었을 때,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5:3). 그래서 모든 [아담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형상을 갔고 태어 낳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처럼 쭉 지내오게 되었습니다, 기질뿐만 아니라, 모습도” (Dagg, ibid., p. 150).

그래서 온 국가들과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그 까닭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3),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에베소서 4:18).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역대하 6:36).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 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3:9-19).

인간의 현재 상태에서, 아담의 후손으로서, 인간은 지금 “죄 아래에” 있습니다 (로마서 3:9), 바로 이것은, 죄의 통치 아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로마서 3:9-19에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허물로 죽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5).

타락한 아담의 자손이 어떻게 죄의 노예 상태와 부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해답 입니다 –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요한복음 3:7). 여러분의 첫 출생 때, 여러분은 아담의 아들로서 태어 난 것입니다, 죄로서 부폐한 몸. 여러분은 반드시 거듭나서 지금 생명을 받으시고 영원한 영생을 얻으셔야 합니다.

중생이란 그리스도께서 새 탄생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신학적 용어 입니다 (요한복음 3:3, 7). Dr. John L. Dagg (1794-1884), 남침례교의 첫 신학자로서, 말하기를 중생 (거듭남)은 “성격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일으킨 변화가 너무 위대해서, 그 주제가 새로운 피조물 이라고 말합니다” (John L. Dagg, D.D., A Manual of Theology, Southern Baptist Publication Society, 1858, p. 277). 그리고 나서 Dr. Dagg는 이 말씀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첫 대각성 운동 때 유명한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훈련 받은 복음주의자 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웰즈, 영국, 스코틀랜드와 아매리카의 넓은 벌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듭남 대해서 전했습니다. 두번째 설교를 전했을 때, 젊은 나이 스물 두살 때, 이 말씀구절을 갔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1737년 8월달에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Whitefiled의 설교를 편집하고 간략한 형태로 여러분에게 전할 것입니다 (저의 몇 의견을 포함해서), “중생”이라는 주제의 설교 입니다 (George Whitefield, Sermons, Pietan Publications, 1994 edition, volume III, pp. 107-118). 그의 본문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위트필드가 언급하기를 중생 (거듭남)의 교리는 기독교의 교리 중에서 제일 핵심이 되는 중 하나 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문제가 걸려있는 주제 입니다. 또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모든 교파들이, 동의한다고 주장 합니다. 하지만 거듭남 대해서는 거의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오늘 날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은 중생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존재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위트필드가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할 때의 교회 상태와 우리도 똑같은 슬픈 시점에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할 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그들의 가장 깊은 생각의 기능 안이 새로워져서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를 수 있게, 아니면 주님의 보혈로서 얻는 구원의 소망이 있을 때; 그들은 니고데모처럼 외칠 준비가 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아니면 아테네인들처럼, “이 수다쟁이가 무엇을 말할까요?” 교인들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만약에 우리가 말할 때, 아니면 교인들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우리가 예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상한 교리를 가르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생 대해서! 많은 목사님들은 자신들의 강대상에서 중생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 부분적으로는 교인들을 잃어버릴까봐, 아니면 목사님들 스스로가 한번도 중생을 경험하지 못 했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성도 중 회심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또한 우리가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은, 만약에 그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방황하는 죄인이 지옥의 영원한 불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Whitefield 의 설교 이후,

IV. 네번째,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할 인간의 필요성.

말씀 구절에서 기록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의미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 “결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의미는 여러분이 “[강대상 앞으로] 나가서” 세례를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그냥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 이름으로 그리스도인 –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원한 지옥의 불로 보낼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2:13).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행하는 외부적인 일보다 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이익을 주님과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께 나아가 믿음을 통해서 신비적으로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그리스도와 함께…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5, 6, 9). 만약에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았으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으면, 그러면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으시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아직도 방황하는 죄인 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V. 다섯번째,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말씀에서 기록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이것은 육체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육체적이라고 무식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한복음 3:4).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요한복음 3:6), 여러분은 계속 타락했던, 부폐한 사람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는 여러분의 마음이 온전하게 변화 한다는 뜻입니다. 스코필드 (Scofield) 기록에 의하면 “피조물” [creature] 단어 옆에 “r”의 참고가 있어 헬라어로 “창조” [creation] 라는 의미를 뜻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는 동일한 인간의 본성으로 남아 있지만, 새로운 마음 (좋고 싫고 의 변화)과 새로운 사고 (생각하는 것들)가 창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시편 51:10).

아니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바로 이것이 중생 입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을 “새로운 피조물” 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 대해서 죄인들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힘든 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거듭남을 허락하시지 않는 이상 여러분의 죄로 인한 받아야 형벌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에 못 들어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여기 사도가 선언했던 증명이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거듭남 대해서 증명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많은 말씀들을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간구해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달라고 했는 지 (시편 51:10), 또한 백성들이 “새 마음”을 갖고 자신들의 주 하나님에게 돌아가라고 얼마나 선지자들이 경고를 했었는지.

신양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3:3-8절을 통해 거듭남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듭남 대해서 아주 명백하게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요한복음 3:7). 우리가 반드시 “살려져야” (에베소서 2:5) [영어로 “quickened”] 한다고 언급 했을 때 사도바울은 중생 (거듭남) 대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언급했을 때,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에베소서 4:23), 그리고, 또 다시, 그가 언급하기를 우리가 “구원하시되…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디도서 3:5). 만약에 성경에서 다른 구절이 없으면, 제 생각에는 이 말씀구절 만으로도 여러분이 거듭나야 한다는 충분한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이 모든 말씀 구절들이 보여주는 것은 마음의 실질적인 변화의 절대적인 필요성 입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들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 마음의 변화의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중생과 회심의 대한 설교들을 너무 못 (아예 안 들었거나!)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음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마태복음 13:15).

중생이 (거듭남) 필요하다는 또 다른 이유는 죄로 인해 온전히 부폐된 인간의 상태 때문 입니다. 성경이 주장하기를 인간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1:5);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것처럼 (로마서 7:18),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린 것처럼 (로마서 7:14)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처럼 (로마서 8:7) –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처럼 (에베소서 4:18).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아주 끔직한 상태에 있기에, 이렇게 드럽고, 부폐하고, 오염된 가엾은 자가 변화받기 전에 깨끗하고 거룩한 하나님과 살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빛과 어둠움이 교제 한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사탄안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타락하고 죄악스러운 본성이 의심을 넘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셔야 합니다, 안 그러시면 평생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못 하실 것입니다, 안 그러시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소망을 이루지 못 하실 것입니다, 천국에도 못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은 반드시 새로운 피조물이 되셔야 합니다, 안 그러시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갖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많은 사람들은 죄악스러운 생각과 마음을 갖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죽게 되자 마자 갑작스럽게 천국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만약에 진정한 천국이 무슬림들이 말하는 천국이라면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이 주장하기를, 수많은 죄악의 즐거움을 갖고 참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천국의 기쁨은 오직 영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드러운 것들은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절대적으로 변화 되어야 하는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는 반드시 여러분의 부폐된 본성이 온전한 혁신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는 이상] 못 들어가느니라 – 하지만, 대신에서, 주님이 말씀하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않는 이상],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5). 거듭남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제일 사랑스럽다는 노래가 있다 해도 청각 장애인에게 무슨 즐거움을 주겠습니까? 제일 아름답다는 그림이 있다 해도 시각 장애인에게 무슨 즐거움을 주겠습니까? 미각이 없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 해도 그 맛을 알 수 가 있습니까? 추잡 스러운 돼지가 아름다운 꽃 정원에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확고하게 못 합니다! 각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본성이 변화되야 이러한 축복들을 누릴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또한 여러분의 영혼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에는 여러분의 영혼은 변화될 수 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그리고 현재 교회에 다니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죽은 후에도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변회되지 않아서 지금 교회 다니는 것을 즐기시지 않으시면, 죽은 이후 천국에서도 즐기시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거듭나지 않으시면, 그 때에는 여러분에게 오직 한 곳만 있을 것입니다 – 그 곳은 지옥 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거듭남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어떠한 사람들은, 제 아내 같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회심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거듭남의 보편적인 방법은 일차적으로 그 사람이 지었던 큰 죄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보통 자신의 어머니가 알고 싶지 않는 죄, 하나님은 더욱더 알지 못하게! 이러한 큰 죄를 생각하면서, 사람은 삶에 있어서 지었던 다른 죄들을 생각하게끔 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본질적으로 죄인이 아닌 이상 이러한 죄악들을 저지를 수 가 있었을까?”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영은 자신이 누군지 드러나게 합니다, 사실 상, 근본의 죄성들, 탄생부터 죄인이었던,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변화의 시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만큼 노력을 해도,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버리려고 절망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슬프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Luther, John Bunyan, Whitefield 도 했습니다 – 그리고 부흥의 시대 때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는 외쳤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 이제는 그가 다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 준비 시켰습니다. 이제는 그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낄수 있도록 형성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느낍니다.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자신의 죄를 깨끗히 씻을 수 있다고 그는 느낍니다. 이제는 그가 그리스도께 가까히 갈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8),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도록 가능케 하며, 그는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은 회심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이제는 그가 늙은 John Newton과 함께 기쁘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억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Amazing Grace” by John Newton, 1725-1807).

삼위일체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아들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여러분이 곧 거듭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You may email Dr. Hymers at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
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Ye Must Be Born Again” (by William T. Sleeper, 1819-1904).


설교 요약

타락한 인간의 멸망과 중생

(ON THE RUIN AND REGENERATION OF FALLEN MAN)

by Dr. R. L. Hymers, Jr.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 3:6-7).

I.   첫번째, 인류의 원상, 창세기 1:27; 전도서 7:29; 창세기 1:31;
에베소서 4:24; 고린도전서 15:45.

II.  두번째, 인류의 타락, 창세기 2:16-17; 로마서 5:12; 6:23; 5:19.

III. 세번째, 인류의 현재 상태, 창세기 5:3; 에베소서 2:3; 4:18;
역대하 6:36; 로마서 3:9-19; 에베소서 2:5; 요한복음 3:7;
고린도후서 5:17.

IV. 네번째,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할 인간의 필요성, 마태복음 22:13;
에베소서 2:5, 6, 9.

V.  다섯번째,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요한복음 3:4, 6; 시편 51:10; 에스겔 36:26; 요한복음 3:3;
시편 51:10; 요한복음 3:3-8, 7; 에베소서 2:5; 4:23; 디도서 3:5;
 마태복음 13:15; 시편 51:5; 로마서 7:18, 14; 8:7; 에베소서 4:18;
요한복음 3:3, 5; 로마서 7:24; 마태복음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