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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의 외로움 –그리고 지역 교회

(EXISTENTIAL LONELINESS – AND THE LOCAL CHURCH)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10월 3일 주일 아침,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October 3, 2010

“또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적들이 있고 땅에는 민족들의 고난과 혼란이 있으며 바다와 파도가 울부짖으리로다. 땅에 임하는 그 일들을 내다보는 것으로 인해,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을 기진하게 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라” (누가복음 21:25-26). [킹제임스 흠정역]


종말에는 세상의 심리 상태가 두 요소의 특징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는, “민족들의 고난과 혼란이 있을” 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25). “perplexity” [킹제임스 영어에서 기록한 단어, 한어로는 혼란] 라는 단어는 헬라어 단어 “aporeō” 부터 나온 것입니다. Dr. Strong이 주장하기를 이 단어의 의미는, “빠져 나갈 길이 없거나…(정신적으로)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 합니다”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number 639).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세대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 아래 있게 되 혼란을 맞을 것이며, 정신을 잃게되, 자신들의 절망의 상태로부터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두번째로, 그리스도께서 예상하기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할 것이며]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누가복음 21:26). 마지막 날의 세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로서 겁에 질릴 것이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26).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Jean-Paul Sartre (1905-1980)는 현대인의 두려움 대해서 언급 했었습니다, “빠져 나갈 길이 없다”라는 느낌을, 자신의 작품 “No Exit” [비상구는 없다] 에서 표출 했습니다.

사실 상 Jean-Paul Sartre가 “실존주의”를 대중화 시켰습니다, nihilism [허무주의]의 철학, 삶에 있어서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신념 입니다. 절망의 관해서 실존주의는 부정적 개념의 철학 입니다, 하나님 없이, 소망 없이, 염려로 가득차, 목적이 없는 우주 안에서 혼자 존재한다는 가르침 입니다.

Dr. Paul Chappell는, 그의 책에서, Understanding the Times, 언급하기를, “여러분은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염려하고 계십니까? 밤 뉴스가 여러분의 마음을 고민하게 합니까? 여러분은 정부 대해서…재정 안정과, 앞으로의 인력 시장과, 여러분의 [미래] 대해서 걱정을 하고 계십니까?...인간의 시각은 회의, 불만, 그리고 고민만 제의하게 됩니다” (Paul Chappell, D.D., Understanding the Times, Striving Together Publications, 2010, p. xix).

저는 Billy Graham의 “결단주의”와 다른 주제들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본인이 쓴 책World Aflame (Doubleday and Company, 1965)에서 누가복음 21:25 대해서 예기한 것은 매우 옳다고 생각합니다. Billy Graham이 언급하기를,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상해지는, 이렇게 초조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너무 바빠서 자신들 마져도 우리의 거슬린 신경들을 잘 고치려고 하다가 신경 쇠약을 맞게 됩니다. 가정은 현대 삶의 압박으로부터 허물어지고 있습니다…가족끼리 서로 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 쇠약의 세대에 안에 있는 우리는 확실한 위험에 갇혀 있습니다” (ibid., p. 217).

여러분은 얼마 전 텍사스 주립 대학교의 젊은 학생의 소식을 들어 보셨습니까? (9월 29일, 2010). Colton Joshua Tooley는 19살로서 이 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나고” “존경” 받았던 학생으로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환경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Colton Joshua Tooley는, 스키 마스크를 입은 채, “화요일 날 텍사스 켐퍼스에서 도서실에 들어가기 전 돌격용 자동 소총으로 발사 했으며 끝에는 자신에게 쏘았습니다” (The Associated Press, Wednesday, September 29, 2010). 감사하게도 아무도 사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부탁을 드리지만 이 학생의 가정을 위해 기도 하세요. 그러나Colton Tooley 자신은 어떡합니까? 18살부터 25살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이 두번째로서 죽음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게 까지 멀리 가지는 않지만, 저하고 대화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빠져 나갈 길”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잃어 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자신들의 절망의 상태에서 “비상구”가 없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외로움 입니다. 다른 젊은이들처럼, 제가 보기에는Colton Joshua Tooley도 매우 외로웠던 청년이었을 겁니다. 그 켐퍼스에서 수천명의 대학생들 사이에, 누구하고도 진정으로 기대할 수 없는, 그는 심히 외로웠을 거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Dr. Leonard Zunin에 의하면, 뛰어난 정신과 의사로서, 인류의 최악된 문제는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또한 정신 분석가 Erich Fromm이 언급하기를, “인간의 제일 깊은 필요성은 자신의 분리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외로움의 감옥에서부터 떠나는 것이다,” 고독으로부터 멀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스 엔젤레스와 같은 큰 도시처럼 젊은이들에게 더욱더 외로운 곳은 없습니다, 아니면 대학교 켐퍼스와 같은, Pasadena City College나, Cal State L.A.나, 아니면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Colton Joshua Tooley가 몇년 전 자살했던 곳. 그는 너무 외로워서 더욱더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수천명의 학생들과 둘러 싸여 있었어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상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그 아무도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 – 여러분이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느낌?

절망적인,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존재감의 외로움은 많은 출처가 있습니다 – 가정의 파편으로부터, 특별히 우리 중국계 젊은이들과, 다른 아시아인들도, 그리고 또한 라틴계 젊음이들도.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이혼했거나 아니면 긴 시간동안 일을 해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겁니다. 여러분이 제일 필요할 순간에 부모님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관심을 사려고 “twittering” [트위터를 사용하다는 용어] 이나, “Facebook”이나, 끝없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아니면 핸드폰으로 수백통을 겁니다. 그러나 다 피상적입니다. 여러분은 기계를 통해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굴 대 얼굴로 진정한 사람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놀랄일도 아니지요, 통신기술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그 끔직한 감정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저의 중국계 목사님 Dr. Timothy Lin께서는 이 감정을, “젊음의 외로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Colton Joshua Tooley가 교회를 다닌것을 저는 확고합니다. 이 학생의 부모님들은 Joshua[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잘 알려진 이름 입니다. 하지만Colton Joshua Tooley가 다녔던 교회는 외로움을 치유하기에 실패했습니다. 침례교회 였습니까? 아니면 다른 복음적 교회였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복음적 교회들은 주일 날 저녁 예배를 드리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저녁 예배를 “진보적”이라고 여깁니다 – 그러나 젊은이들이나, Colton Joshua Tooley와 처럼 결혼을 못한 사람들에게는 주일 저녁 시간에 교제를 통해서 충분한 관심을 주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 토요일 저녁에도요! 중국계 교회의 저의 담임 목사님이셨던, Dr. Timothy Lin은, 매번 언급하시기를, “교회를 여러분의 두 번째 집으로 삼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젊음의 외로움은 치유 될 것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한 주의 네 번씩 젊은이들을 위해서 마련된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보혈을 흘리게 하사 우리의 죄를 씻기 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칭의함을 주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거듭남과 영생을 주기 위해, 죽음에서부터 육체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책을 저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전혀 학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설립하신 유일한 기관은 지역 교회 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 이 헛되고 텅빈 세상의 절망적이고 허무한 존재감의 외로움으로부터 여러분이 탈출하기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세우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는 우리의 모델 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곳 입니까 –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6-47).

이러한 교회에 우리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바로 “떡을 떼는” 교회 입니다, 매 주일 아침 예배와, 매 주일 저녁 예배 후 같이 식사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핵심이 되는 교회가 우리 교회 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매 예배마다 전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아침과 저녁에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있는 교회 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교회에 매번 오신다면, 여러분은 배가 부를 것입니다 – 영적인 음식과, 맛있는 음식으로서!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송하지 않는 마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 “왜 외로워 하십니까? 집 같은 교회로 오세요! 왜 방황 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집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세요!” 다같이 일어나셔서 제가 작사 한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Come Home to Dinner.” 그 옛날 시골적인 서양 분위기의 멜로디로 불러 집니다, “On the Wings of a Dove.” 3절을 부르겠습니다!

대도시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보이네;
그들이 권하는 것은 작고 나눠줄 사랑도 없네.
그러나 집에 와서 예수를 만나면 알게 될 것일세,
식탁의 음식과 친분을 교류하는 곳!
집, 바로 교회로 와서 식사하세, 감미로운 교제를 위해 모이세;
아주 훌률한 대접일 것이네, 우리가 다같이 앉아서 먹을 때!
   (“Come Home to Dinner” by Dr. R. L. Hymers, Jr.;
     to the tune of “On the Wings of a Dove”).

하지만 제발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만약 가끔식 교회에 나오시면 우리도 여러분의 존재감의 외로움과 절망을 극복시키기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여기로 오실 계획을 짜세요. 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오세요. 여러분의 중간고사를 위한 공부는 지금 하세요. 맨 마지막 시간까지 기다려서 교회에 못 나오는 일은 하지 마세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러한 방법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매일 공부하세요. 그러면 중간고사 기간 때 교회를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Halley’s Bible Handbook (Regency, 1965 edition, p. 819) 에서, Dr. Henry H. Halley가 언급하기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매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세요! 집 같은 교회로 매 일요일마다 오세요! “Come Home to Dinner”의 2절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의 친구들과 감미로운 교제가 있을걸세;
다같이 상에 앉아, 기쁨으로 마음이 채워졌네.
예수는 우리와 함께 있네, 다 같이 선포하세,
집에와 저녁식사를 하며 빵을 나누세.
집, 바로 교회로 와서 식사하세, 감미로운 교제를 위해 모이세;
아주 훌률한 대접일 것이네, 우리가 다같이 앉아서 먹을 때!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You may email Dr. Hymers at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
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누가복음 21:25-28.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In Times Like These” (by Ruth Caye Jones,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