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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활!

(RESURRECTION NOW!)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5월 2일 주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May 2, 2010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그리스도가 행하신 기적들은 영적인 진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은 영적인 마음의 장님들 눈을 뜨게 하실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문등병자들을 치유하신 것은 영적으로 썩은 사람들을 치유하실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세번씩이나 죽은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마가복음 오장에서는 주님이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누가복음 칠장에서는 죽어있던 나인이라는 과부의 아들을 주님이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십일장에서는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으로 배울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 오늘 저녁 예배에서 우리들 중에 수많은 야이로의 딸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과부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있습니다 – 왜냐하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영적인 죽음에서부터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새 생명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체험했던 부활은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 죽음에서부터 생명을 얻은 용어 입니다, 또한 신생이라고도 말합니다. Dr. W. G. T. Shedd 가 언급하기를 성경은 거의 매번 “중생을 의미하기 위해서 부활”을 인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중생을 의미할 때 영적인 부활을 뜻합니다” (W. G. T. Shedd, Ph.D., Dogmatic Theology, P and R Publishing, 2003 edition, pp. 864, 865). 에베소서 이 장에서는 육적과 영적의 부활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이 말씀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위대한 진리와 신생의 대해서 배울수 있습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서 중생의 관한 세 진리 대해서 말입니다.

I. 첫째로, 우리는 죽어 있었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인륙가 타락하면서 인간들은 멍이 들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우리가 그 멍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말씀이 언급하는 것은 우리가 멍만 들은 것이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인간 안에 충분한 선이 존재 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죄와 관계가 없다는 의미 입니다. C. G. Finney가 이 거짓의 선언을 언급했었습니다,

왜 죄가 인류에게 자연스럽습니까? 인류의 본성이 죄성 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교리는…하나님에게 한없이 부도덕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지력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강대상에서부터 제거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교리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이것은 이단적인 철학의 유물입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을 통해서 기독교 교리 안에 떠넘기게 된 것입니다 (C. G. Finney, Finney’s Systematic Theology, Bethany House Publishers, 1994 edition, pp. 268, 263).

네, 인간이 죄로서 죽었다는 교리가 오늘 날 강대상에서 제거 되었습니다. 결과는 무엇일까요? 도덕성과 영적인 난장판을 오늘 날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바로 이것이 결과 입니다!

인간이 죄로서 죽었다는 교리가 어거스틴으로부터 발명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인간이 절망적인 것과 악하다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리키고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은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욥기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기 14:4).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욥기 15:14).

시편저자가 언급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시편 58:3).

솔로몬 왕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전도서 9:3).

선지자 예레미아가 예기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폐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예레미아 17:9).

그리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1, 3).

또다시, 골로새서에서, 사도께서 언급하기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골로새서 2:13).

Finney는 인간이 죄로서 죽었다는 교리를 아거스틴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보여드린 것처럼, 이 교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Finney의 사상은 이단자의 Pelagius (A.D. 354-420)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의 이단 사상은 몇 세기동안 영향을 주었습니다. Finney는 Pelagianism (펠라기아주의)를 너무 주장했었습니다! 우리 다같이 성경이 가리키는 명백한 교리들을 고수 합시다! 인간은, 중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죄로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아파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것들로부터 죽어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에베소서 2:5).

이것보다 무엇이 더 명백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로서 죽음” –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까? 훌륭한 스펄젼이 말하기를,

그 몸을 바라보세요: 여러분은 칠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멍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몸 위로 짐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곤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두움 속에서 닫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죄로서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겁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정의란 감옥에서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하지는 않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그러나 그 저주는 죄인의 마음에 소동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오! 살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여러분이 앞으로 올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은 계속 영적인 요소들 대해 의식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서, 인간은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C. H. Spurgeon, “Resurrection With Christ,” The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Pilgrim Publications, volume 14, pp. 207, 208).

여러분은 교회에 앉아서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 대해서, 취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들으셔도, 무관할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신 것과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사도행전 1:3) 나타나셨음을 여러분이 들었을찌라도 예수님 부활의 왕권과 능력으로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보혈에 대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씻을 수 있을 찌라도, 씻음을 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뜨거운 열성으로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여러분 자신은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큰, 검정색 성경책을 구입하셔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나오는 생명을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단순한 글자일 뿐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통하여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며, 알아가는데 있어서 새로운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님을 모르십니다; 여러분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시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렇게만 말할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어떻게요?” “내가 어떻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답은 여러분을 피할 것이며 여러분은 왜 그런지 이해를 못 하실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배움을 통해서 구원을 얻으시려고 한다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어떻게 구원을 얻어야 하는지 못 “배우”실 것입니다! 전혀, 오십 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셨어도 – 어떻게 구원을 얻어야 하는지 못 배우실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질문을 물어보면 볼수록, 여러분은 더 악화될 것입니다, 계속 반복적으로 공부하시다가 처음에 지니고 있었던 관심도 사라질때까지, 그리고 나서 아무 변화가 없는 절망 속에 교회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3:7).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죄를 갖고 죽을 것이며 다음 세상에서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고통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영원히 하나님 임재 밖으로, 슬픔 속에, 불 속에, 소망 없이,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유다서 13) 계실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로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문말씀은 작은 희망을 제공합니다 – 그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입니다. 바로 제가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체험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들 중 구원을 얻으신 분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된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만 살수 있다는 것을!

II. 둘째로, 우리는 살아있게 되었다.

다같이 일어 나셔서 사절과 오절을 큰 목소리로 읽읍시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2:4-5).

자리에 앉아 주세요.

오, 이것을 들으시오, 죄인들이여! 사도의 축복의 말을 들으세요, “그러나 하나님이.” 이 단어들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은 죄로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단어들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하세요! 이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뛰고 춤을 추세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는 믿음의 역사 안에서 이 단어들을 계속 적응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을 상황마다, 하나님 께서는 개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 할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4절의 말씀, “그러나 하나님이!” [KJV 버젼].

온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너무 타락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창세기 6:7).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6:8).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대 홍수에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통치 아래 노예로 지내면서 탄성과 고통의 소리를 질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출애굽기 6:6-7). “그러나 하나님이.” 사사기 시대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사사기 6:6). 그러나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사사기 6:11)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 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그리고 나서 기드온이 외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사사기 7:15).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은 체포 당하시고,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죽으셔서 인봉된 무덤에서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부터 부활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사도행전 10:4). “그러나 하나님이.” 대제사장과 무리들이 사도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어서 (사도행전 5:18)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 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사도행전 5:19.20) [KJV]. “그러나 하나님이” 옥의 문을 열어 주시고 그들의 복음 전함을 축복 하셨습니다.

계속 반복적으로,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 긍휼의 대한 예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2:4-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와, 모세의 시대와, 기드온의 시대와, 사도들의 시대와, 그리스도의 부활 시대에서 긍휼을 배풀었습니다 –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긍휼을 배풀지 않겠다고 생각하세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2:4-5).

우리들 중에 누가 “소생” 되었는지 한번 보세요. 우리들 중에 누가 죽음에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는지 한번 보세요! 바라 보세요 – 우리의 모든 집사님들, 모든 교회들의 지도자들 – 이 모든 분들은 다 한번씩 “죄로서 죽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바라 보세요 –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소생”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형성되었습니다 –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소생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리스도께서 동생을 [나사로] 죽음에서부터 살리신다고 해서 불쌍한 마르다는 너무 놀랐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더욱더 그녀를 놀랍게 하듯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6).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영생을 받았었을 때,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고, 영원히 죽지 않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Spurgeon, ibid., p. 214).

맏습니다! “평생 죽지 마세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대한 Finney의 거짓 선언은 우리가 거부합니다. Finney가 언급하기를, “그들에게 분명히 통보된 것입니다, 그들이 얻은 구원이 끝가지 거룩함 안에서 인내해야 하는 조건부인 것을. 그들은 부탁을 받았습니다…두려워하라고…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Charles G. Finney, Finney’s Systematic Theology, Bethany House Publishers, 1994 reprint of 1878 edition, p. 546). 맏습니다,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잃을수 있다고 Finney는 주장했습니다! 실제적으로, 기독교인이, 죽은 후에, 천국 밖으로 떨어져 나가 구원을 잃을수 있다고 Finney는 주장 했습니다! 여기 Finney의 신학책에서 정확히 인용된 글이 있습니다, “천국의 성도들은 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신앙을 잃을수가 있으며 떨어져 내려, 멸망할 수 있습니다” (C. G. Finney, ibid., p. 508). 맏습니다, 기독교인이 천국에서 떨어져 내려 멸망할 수 있다고 Finney는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펠라기안 이단성 입니다.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한번 회심한 사람은 다시 “회심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번 중생 한 사람은 다시 “중생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2:5).

스펄젼이 언급했습니다, “한번 신성의 생명을 얻었으면은, 평생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우리의 내적 생명을 소생시키시고, 멸망하게 놓아두지 않습니다…하나님은 오늘 구원시키시고, 내일 죽게하지 않습니다…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요, 그러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은 죽지않는 삶을 살아갑니다…기쁨안에서, 그리고 모든 찬양을 여러분의 하나님께 올리세요!” (Spurgeon, ibid., p. 215). 하지만 한 가지 더 요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III. 셋째로, 우리는 일으켜 졌다.

다같이 일어나셔서 오 절과 육 절을 큰 목소리로 읽으세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5-6).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사람들은 저한테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이들은 복잡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 세째 하늘에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12:2). 이들은 그리스도가 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기 위로, 이 갤럭시의 별들 위로, “낙원”이라고 주님이 부르던 곳 (누가복음 23:43). 하나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다고 이들은 성경을 통해 읽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거기에 올라 갈 수 있습니까?” 라고 이들은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저 위에 그리스도께 갈 수 있습니까 – 다른 세상에?”

네, 당연히, 답은 뻔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주의”가 많은 이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고로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요한복음 6:44절을 읽을 때마다 머뭇 거립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휴거 때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마중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들을 끌어 올린다는 것을 믿기에는 이들에게 문제가 없습니다 (읽어보세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고린도전서 15:51-53). 그러나 구원의 대해서 이들에게는 믿는것이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요한복음 6:44절을 읽을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동일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마중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을 하늘로 이끄는 능력이, 반드시 지금 여러분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 이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게 하십니다 – 죄인 스스로가 아니라 – 오직 하나님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꼭 휴거 같습니다 – 만약에 지금 일어 난다면 –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실 때! 그러면, 그 아름다운 순간에, 에베소서 2:6절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읽어 보세요! 다 같이 일어나셔서 큰 목소리로 읽읍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6).

자리에 앉아 주세요.

이 말씀 구절에 대해서 Dr. Hendriksen이 언급하기를, “우리는…살아서, 자라서, 하늘 높은 곳에서 있게 됩니다” (William Hendriksen, Ph.D., New Testament Commentary, Baker Book House, 1981 reprint, p. 118; note on Ephesians 2:6). The Reformation Study Bible (성경개혁공부)에서 기록되기를,

…우리를 살리셨다…우리를 일으키셨다…우리를 앉게 하셨다. 이것들이 그리스도의 삶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이었다: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심과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심.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 바울은 그들에게 적용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주님에게 나아가는 연합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자 대해서 언급할 때 구속을 받는 자들도 언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formation Study Bible, Ligonier Ministries, 2005, p. 1706; note on Ephesians 2:5, 6).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이루어 집니다, 우리가 회심할 때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이끌어 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아직도 구원을 얻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하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들어가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3:24). 이러한 설교들을 읽고 또 읽으세요. 여러분의 모든 존재를 “힘써” “들어가세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누가복음 11:9).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계속 두드리라, 계속 기도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가능한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셔서 여러분의 방황과 죄악의 상태를 깨달으세요. 여러분의 영혼을 소생 하라고, 살게 하라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지옥의 끔직함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가 없는 영원.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실 것입니다”…그리고 여러분을 일으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하늘 높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기쁨의 순간이 여러분에게 곧 올것을 소망합니다! 곧 여러분이 살아서 –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하늘 높은 곳으로” 이끌어 가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죄로서 죽어있는 여러분이, 지금 부활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다시 태어 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에베소서 2:1-7.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Come, Ye Sinners” (by Joseph Hart, 1712-1768;
to the tune of “Yes, I Know” by Anna W. Waterman, 1920).

설교요약

지금 부활

(RESURRECTION NOW!)

by Dr. R. L. Hymers, Jr.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에베소서 2:1)

I.   첫째로, 우리는 죽어 있었다, 에베소서 2:1; 창세기 6:5; 욥 14:4,
15:14; 시편 51:5; 시편 58:3; 전도서 9:3; 예레미아 17:9;
에베소서 2:1, 3; 골로새서 2:13; 에베소서 2:1, 5;
사도행전 1:3; 디모데후서 3:7; 유다서 13

II.  둘째로, 우리는 살아있게 되었다, 에베소서 2:4-5; 창세기 6:7, 8;
출애굽기 6:6-7; 사사기 6:6, 11, 16, 7:15; 사도행전 10:40;
사도행전 5:18, 19, 20; 요한복음 11:26.

III. 셋째로, 우리는 일으켜 졌다, 에베소서 2:5-6; 고린도후서 12:2;
누가복음 23:43; 요한복음 6:44;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고린도전서 15:51-53; 누가복음 13:24;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