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Sermon

이 설교 원고는www.sermonsfortheworld.com 을 통해서 매달 215개 이상의 국가들과 약 116,000대의 컴퓨터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YouTube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로 시청하고 있으나 그들은YouTube을 통해서 우리 교회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YouTube을 통해서 사람들이 우리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34개의 언어로 통역되어 수천명의 사람들이 매달 보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제작권이 없음으로 우리의 허가 없이 설교자들은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매달 기부금을 통해서 우리가 무슬림과 힌두교 국가들도 포함한 전세계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시길 원하시면 이곳을 클릭하시길 바랍니다.

Dr. Hymers에게 편지를 쓰실때는 어느곳에 거주 하는지 함께 알려 주십시요. Dr. Hymers의 이메일 주소는rlhymersjr@sbcglobal.net 입니다.




시드게 하는 성령의 역사

(THE WITHERING WORK OF THE SPIRIT)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3월 14일 주일 아침,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March 14, 2010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6-8).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선지자에게 말한 이 음성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입”이였습니다, 5절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이사야에게 들리기를, “외치라.” Dr. Gill이 주장은, “이것은 선지자를 향한 주님의 음성이었다, 또한 누구나 그리고 모든 복음 전도자들에게, 예언과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이다” (John Gill, D.D., An Exposition of the Old Testament in Six Volumes,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89 reprint, volume 5, p. 222).

그러자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바로 이 질문을 매 주일 설교를 준비하기 전 설교자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히브리어로 “외친”다는 의미는qârâ입니다. 이 의미는 “부르다,” “만난 사람과 접근하다 [대면하다]”의 뜻이 포함 됩니다(Strong #7121). 이사야 58:1절에 동일하게 기록된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이사야 58:1).

모든 복음 전도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확실한 방법과 스타일을 사용하라고 명령을 받었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방법과 스타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방법과 스타일이 있었고, 모든 구약시대의 선지자도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방법과 스타일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선구자로서. 세례요한은 이사야의 구절을 가리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한복음 1:23).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대변인 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외치신 것처럼, 그를 통해서도 외치셨습니다, 요한이 인용한 것처럼,

“[요한이]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한복음 1:23).

요한복음 1:23절에 “외친다”는 단어가 헬라어로는bǒaō 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감탄하다; i.e. [바로] 외치다…부르짖다” 입니다 (Strong, #994). 이와같이, 히브리어 단어로 외치다 의 의미는, “크게 외치다”라고 우리가 배울수 있습니다 (이사야 58:1). 이 의미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대변인처럼 크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단어로서는 더 나아가, 설교자로서 “감탄사”의 소리로, 이 세상 광야에서 방화하는 죄인들에게 “외치고 부르짖으라” 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큰 목소리로 설교하는 방법을 선지자들은 사용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부르짖은 것이지요, 이사야와 세례 요한이 한 것처럼, 사람들을 “부르고,” “접근하여 [대면하며]”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언급했듯이, 우리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방법과 스타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시대에는 설교의 방식과 스타일에 있어서 성경의 대한 근본적인 불순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예언으로 우리에게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디모데후서 4:2-3).

현대적 설교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낳은 예언적 구절을 성경 안에서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늘 날 지속적인 “가르침”은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일”은 너무 없습니다 – 긴급함과 불이 없는 “가르침” –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지시와 같은 예는 현대 설교에 없습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말라,” 이사야가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처럼 현대 설교에는 이러한 원천지가 없습니다, “외치라,” 요한복음 칠장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외쳐” (요한복음 7:28); 동일한 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서서 외치”신 모습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7:37). 오순절 날, 베드로가 설교한 스타일도 없습니다, 외치면서 청중들을 “불렀었던 [대면 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부르짖으면서, 사도행전 2:14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사도행전 2:14).

Dr. Gill이 언급하기를, “’소리를 높여 가로되,’ 바로 이 음성을 온 만민을 통해 들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주장했습니다…자신들의 열성과 영의 열정, 그리고 확고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처럼; 높으신 성령님으로부터 충만해서, 그는 사람 중 용감한 남자였습니다” (John Gill, D.D., An Exposition of the New Testament,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89 reprint, vol. II, pp. 153-154; note on Acts 2:14). 그러므로, 저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날 강대상에서 전해지는 설교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원칙들이 있습니다, 설교의 방식 스타일에 있어서 끔직한 불순종 입니다!

성경적 설교, 실제로 청중들이 설교 내용들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접근하는 [대면]” 것을 주목하지 못한 설교자들을 (특별히 미국과 유럽) 우리가 관찰하는데 있어서 실패하면 안됩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바로 이것이 진정한 복음적 설교의 스타일 입니다! 닫혀진 마음과 둔한 정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방식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이젠 우리 서양 세계에서 진정한 회심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을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Brian H. Edwards가 말하기를, “부흥을 일으키는 설교는 능력과 권위가 있어 하나님 말씀을 마음과 정신에 망치로 때리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오늘 날 거의 모든 현대 설교에부족한 것이다. 부훙을 위해 설교하는 자는 언제나 두려움 없이 다급해하는 마음 자세에 거한다” (Brian H. Edwards, Revival! A People Saturated with God, Evangelical Press, 1997 edition, p. 103).

이사야는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제가 말했듯이, 설교자가 주일 설교를 준비 할 때마다 이 딜레마에 빠집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어느 젊은 청년이 듣기를 자기가 다니는 신학교 교수는 오년의 설교 플랜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설교자가 이러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자는,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설교를 준비하지 못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스펄젼은, 제일 위대했던 침례교 목사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설교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기 위해 매주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하나님께 어떠한 설교를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Dr. Lloyd-Jones가 말하기를,

어떠한 메시지 입니까? 여기서는 “내게 있는 것으로” [사도행전 3:6], 바로 이것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내가 받았습니다...내가 이것을 받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사고를 전하지 않습니다…나에게 주어진 만큼 청중에게 전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나는 그들에게 줍니다. 나는 운송 수단일 뿐입니다, 나는 통로입니다, 나는 도구입니다, 나는 대리자 입니다 (D. Martyn Lloyd-Jones, M.D., Preaching and Preacher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1, p. 61).

오래전부터 저를 담당하신 목사님이시자, 스승이시자 멘토이셨던 Dr. Timothy Lin 께서 말씀하시기를,

목사의 모든 임무 중, 제일 어렵고 중요한 임무는 매 주일마다 하나님이 의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를, 의심 없이, 알으는 것이다 (Timothy Lin, Ph.D., The Secret of Church Growth, FCBC, 1992, p. 23).

바로 이 요점이 이사야 사십장 육절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목사가 설교를 받고 전해야 합니다. 이 본문 말씀은 세 중점으로 나눠집니다.

I. 첫쩨로, 삶의 간결함 대해서 우리는 외쳐야 한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이사야 40:6).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 [모든 사랑과 영광] 은 들의 꽃 같으니.” 이 요점을 중요하게 설교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풀 같습니다, 아니면 봄 시절에 비가 온 후 들판에 피어나는 꽃 같습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젊음이 영원히 머물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저는 저의 삶을 뒤돌아 봅니다, 칠십이 되기전 일년이 남았지만, 꼭 칠개월이 지난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여름마다 태양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풀은 말라서 곤색으로 변합니다. 꽃들은 시들어 죽습니다. 삶은 일시적이며, 잠깐 동안이며, 임시적이며, 간단하며, 짧은 기간의 인생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사야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해서 사회생활의 출세와 물질을 모으고자 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서 1:10-11).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도달하고 움켜잡아 출세 합니다, 당연한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과 충돌하지 않고 – 삶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것입니다! C. T. Studd (1860-1931)는 그 당시 부자 중 소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부를 상속 받았지만, 모든 부를 나눠주고 선교사로 남은 삶을 헌신 했습니다 – 처음에는 중국으로, 그리고 나서 아프리까로. C. T. Studd가 말하기를,

오직 한 생명,
   얼마 안가 곧 과거가 되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이루어 진 일뿐만
   견고히 남겠네.

모든 젊은이들이 C. T. Studd 관해 읽어서, 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하지 못합니까, 사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아, 만약에 여러분이 이 진실을 볼수만 있다면!

오직 한 생명,
   얼마 안가 곧 과거가 되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이루어 진 일뿐만
   견고히 남겠네.

곧 여러분은 이 땅을 벗어나 영혼의 형태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계실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여러분의 영혼만 올라 갈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회심을 하지 못한다면 영혼조차도 못 올라 갈겁니다! 아주 단순한 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여러분이 거듭나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영혼을 잃게 될 것입니다 – 평생동안, 그리고 영원히. “하지만,” 어느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많은 중대한 일을 해야 해.” 어느 소녀는 다르게 말합니다, “삶 자체가 부르심이야.” 여러분에게 두 위대한 그리스도의 인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가복음 8:36-37).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이사야 40:6).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부르짖어야 하며 삶의 간결함 대해서 계속 전해야 합니다!

II. 둘째로, 하나님의 영이 시드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반드시 부르짖어야 한다.

다같이 칠 절을 큰 목소리로 읽읍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이사야 40:7).

Dr. Gill 이 언급하기를,

회심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아름다움에 강한 바람을 붑니다…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시들게 합니다; 그들의 거룩함이 진정한 거룩함이 아닌것을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들의 거룩함이 사람들 앞에서…모습 만 이었던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성과 아름다움은 단순[한] 유형일 뿐인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행이 칭의함과 구원을 얻는 것과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시름시름 하다 자신들의 자부심 안에서 죽게 됩니다, 자신들의 대해서 생각하지만 [회심하게 될 때] 남게 되는 것은 손실과 변 입니다(Gill, ibid., p. 223).

스펄젼은 이것을 “시드게 하는 성령의 역사”라고 불렀습니다 (C. H. Spurgeon, The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Pilgrim Publications, 1971 reprint, volume XVII, pp. 373-384). 그의 전임자인 Dr. Gill 이 언급한 것처럼, 스펄젼은 이사야 40:7절이 시드게하는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의 영혼도 매말라 자신의 무력함을 보고, 구원자 없이는 죄와 절망 밖에 없다는 것을 봐야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이사야 40:7).

스펄젼이 언급하기를,

하나님의 영은, 바람 같아서, 여러분의 영혼 들판에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름다움을 시듦는 꽃으로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죄를 확신 시킵니다…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타락된 본성이 얼마나 부폐된 것임을 봐야 합니다 (Spurgeon, ibid., p. 375).

이것이 시드게 하는 성령의 역사 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잘못된 소망을 시드게 하고, 여러분에게 끔직한 죽음의 맛과 여러분의 본성이 얼마나 부폐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모든 소망을 시드게 하고, 여러분의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여러분 대신 흘렸던 보혈.

성령이 여러분의 영혼을 “시드게” 할 때, 여러분이 여겼던 “아름다움”이 드러운 걸레 뿐이었던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려분이 행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 일들이 위선이란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하시는 모든 “선”은 거룩한 하나님에게 타당함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루셨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열납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성경 말씀을 정신적으로 동의한 것 뿐입니다; 이 아무것도 하나님의 시야 앞에서 타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행하셨던 모든 일; 그리고 시도하셨던 모든 것,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불의 심판의 날에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님의 시드게 하는 역사를 겪으시면은 이러한 현상들이 여러분에게 더욱더 명백해 질 것입니다. 어느 여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역겹다는 것을 느껴요.” 얼마 안 되서 그녀는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성이 말하기를, “나는 내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아요.” 그녀에게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Dr. Cagan과 저는 그녀에게 삼당을 하면서 그녀가 “불만족”스럽다는 것보다 그 이상을 느껴야 한다고 건의 했습니다. 회심한 그 여성처럼, “역겨운”것을 반드시 느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 스스로가 완전히 부폐된 존재란 것을 느낄때까지, 진정으로 회심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현상, 바로 시드게 하는 역사와 내적 소란을 그녀는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시드게”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중 몇분에게 시작할 이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40:7절에 기록된 “시듦은” 의 단어는 히브리어 의미로서, “부끄럽다…마르다 (물처럼) 아니면 시들다 (목초처럼)…창피한…망할…말라 떨어지다 입니다” (Strong’s Concordance #3001).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이사야 40:7).

여러분의 마음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헛된 소망과 여러분의 대한 자신감을 마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자신감을 쪼글쪼글하게 만들어야 하며, 화끈거리게 하며, 마르게 해서, 죽는 꽃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시들게 해야 합니다 – 여러분의 부폐된 본성이 “망할” 때까지, 당혹스러을 때까지, 창피할 때까지, 그리고 여러분이 “부끄러”을 때까지. 바로 이것이 시드게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녀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역겨웠”던 것이 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진정한 깨달음에 일어납니다, 진정한 회심 안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사야 40:7).

Ian H. Murray가 언급하기를,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처음으로,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3:19). 이것이 진실로서, J. H. Thomwell 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설교의 방법은 죄의 대한 확신을 극단적으로 조준하는 것이다’ (Iain H. Murray, The Old Evangelicalism: Old Truths for a New Awakening, The Banner of Truth Trust, 2005, p. 7).

“내가 무엇을 외치리이까?” 내가 무엇을 전하리이까? 나는 인생의 간결함 대해서 설교를 해햐 한다. 나는 시드게 하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 관해 전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복음 전도자의 임무입니다! 바로 설교자의 도리 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요점이 있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III.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쳐야 한다.

다같이 일어나셔서 큰 목소리로 이사야 40:8절을 읽겠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이사야 40:8).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구절을 인용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25).

영원한,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 신성한 영감으로 기록된 성서는 매마른 죄인들을 지적합니다, 복음으로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음에서부터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씻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 스스로에게 역겨움을 느낄 때, 우리는 여러분에게 구원자를 가리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회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의 팔 안에 거하실 수 있으며 주님이 여러분의 죄를 짊어질 수 있습니다. 이 실재가 일어날 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요한복음 10:28).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여러분은 평생 영원히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으실 것입니다, 끝이 없는 세상에서.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베드로전서 1:18-25.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Come, Holy Spirit, Heavenly Dove” (by Dr. Isaac Watts, 1674-1748; to the tune of “O Set Ye Open Unto Me”).


설교 요약

시드게 하는 성령의 역사

(THE WITHERING WORK OF THE SPIRIT)

by Dr. R. L. Hymers, Jr.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6-8).

(이사야 40:5; 58:1; 요한복음 1:23; 디모데후서 4:2-3;
요한복음 7:28, 37; 사도행전 2:14; 3:6)

I.   첫째로, 삶의 간결함 대해서 우리는 외쳐야 한다, 이사야 40:6;
야고보서 1:10-11; 요한복음 3:3; 마가복음 8:36-37.

II.  둘째로, 하나님의 영이 시드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반드시 부르짖어야 한다, 이사야 40:7; 로마서 3:19.

III.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쳐야 한다, 이사야 40:8;
베드로전서 1:25; 요한복음 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