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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주제! 무궁무진한 주제!

(THE MAIN SUBJECT! THE INEXHAUSTIBLE SUBJECT!)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2월 7일 주일 아침,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February 7, 2010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저는 아주 진보적인 신학교로부터 졸업을 했었습니다. 보수적인 신학교에 다닐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없어서 이 학교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저는 계속 성경을 의지 할 것이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가리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짐 했었습니다 – 그럼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한 자유주의 저자가 저를 혼돈케 하였습니다. 칼 바르트가 말하기를, “한 손에는 신문을 다른 손에는 성경을 갖고 설교하라.” 그 당시에는 좋은 생각으로 여겼습니다. 칼 바르트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설교가 적절하려면, 뉴스와 연관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안 좋은 조언을 들었던 것 대해서 저는 오늘 날 너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옛날부터 더이상 이러한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왜 제 생각이 바뀌었는지 여러분에게 설명하겠습니다.

많은 보수적인 설교자들이 뉴스의 나오는 모든 사건들을 성경의 예언으로서 여기는것을 들을때마다 저는 놀라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주의의 관점을 얻게된 것 같습니다 – 인식하지 못한 채! 제가 요즘에 설교하는 “뉴스”의 주제는 매 1월달마다 대법원에서 재판하는, 아메리카의 오천백만명의 아기들을 학살 하려는 낙태 관한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이 죄악함을 반대하는 설교를 할 때, 저는 아메리카가 기독교 국가가 아니란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완전하게 부폐된 것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바로 죄에 묶여있는 인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못 박힘에 있는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신문은 한 손에 성경에 다른 손에”로 설교를 그만 한것은 사람들이 더이상 신문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회는 사람들의 매일 매일 삶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습니다. 불황, 잘못된 대통령, 전쟁, 기후, 그리고 오늘 “주 주제가” 되는 소식들은, 내일이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소식들이 지금은 중요하게 여겨질 찔라도,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 집니다. 나폴레옹이 한 일을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세계 1차 전쟁이나 Boer(보어) 전쟁을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몇천년 전부터 영원한 영혼들의 운명은 오늘 아침 설교의 주제에 의할 것입니다 – 그리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 했었을 때 악당인 네로는 로마제국의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대해서 은근한 언급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 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2:2).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설교자가 정치적인 주제는 라디오나 방송사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야 하며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하는 중요한 주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이 말씀 구절에서는 세 요소가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I. 첫째로, “작정하였음이라”의 말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헬라어로 “작정하다”의 단어는 “krinō” 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결정하다” 입니다 (Strong). 바울은 본인의 설교가 Christocentric 으로 되길 결정했습니다 – 그리스도 중심적. 이것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결정한 바울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것이 자신의 설교에 주 주제로 선택한 것입니다. Albert Barnes는 이 요소 대해서 표현을 잘 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든 복음의 전도자들에게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의 경륜입니다.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갈등이나 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철학이나 인간의 기준도 아닙니다…빠삭한 물리학자나 철학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대 주제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겸손의 교리를 어디에서나 부끄럽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진리 안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조롱하여도, 철학자들이 비웃어도; 부자나 중성들이 비난하여도, 하나님께는 관심인 대 주제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대라도, 어떠한 사회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설교] 가 하나님의 선교, 위엄, 역사, 교리, 인격,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 대해서 [관련] 될 때, 성공적일 것입니다. 사도 시대에서도 동일 했었습니다; 종교개혁 때에도 동일 했었습니다; 모라비아 선교에서도 동일 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 부흥 역사에서도 동일 했었습니다. 철학이나 인간의 논리가 알 수 없는 [그리스도-중심적]의 설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위대한 법령’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범죄를 보면서 세상의 비애을 완하합니다, 한쪽으로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세상에서 승리를 선포하는 자로서, 그리고 다른쪽으로는 화목의 위안을 안겨주는 자로서 (Albert Barnes, Notes on the New Testament, Baker Book House, 1983 reprint, note on I Corinthians 2:2).

바울은 가끔식 예언 대해서 언급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핵심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끔식 결혼과 가정 대해서 언급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핵심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명백한 것은 어떻게 번창할 수 있는지 대해서 바울은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좋은 감정을 느낄수 있는지, 아니면 대중적인 사람-중심적 “현대”설교의 주제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Dr. Michael Horton은, 본인의 책Christless Christianity 에서 언급하기를, 아메리카에서 선포되는 거의 모든 설교가, 복음주의적 설교도 포함해서, “도덕적인, 신의 치료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저자가 말하기를 이 도덕적인 신의 치료법의 핵심은 바로, “삶의 근본적 목적은 행복과 자신의 만족이다”라고 주장합니다 (Michael Horton, Ph.D., Christless Christianity, Baker Books, 2008, p. 41). 이러한 목적은 미국 강단에서 선포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목사님들이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설교하신 다고, “어떻게 만족을 할까,”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인생에서 성공할까,” “돈에 매이지 않고 어떻게 돈을 관리할 수 있을까,” “성공적인 가정 생활의 비결,”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비밀,” 등등 (ibid., p. 49). 이 설교 주제들은 실질적으로 침례 교회에서부터 인용된 것입니다. 사도들이 이러한 주제로 설교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대적 복음전도자들은 이러한 주제들을 끊임없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속에서 이러한 설교들이 사도적 설교나 성경적 설교가 아닌것을 의식할까요? 이러한 현대적 주제들은 인간이 중심된 설교입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닌 설교이지요. 이 주제들은 철학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저는 Dr. A. W. Tozer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영적이다. 모든 문제는 영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A. W. Tozer, D.D., "Men Who Met God"). 저도 동의 합니다. 이 이유때문에 사도 바울도 현대적 주제의 설교를 한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한 기록의 의해서. 바울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설교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그의 설교에 제일 중심이며 중요한 주제로 설교하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9:20).

그리고 나서,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사도행전 9:29).

고린도에게,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린도전서 1:23).

로마인들에게,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16).

맏습니다, 스펄전이 표현한 것처럼, 바울은 “한 주제의 사람” 이었습니다! 그 설교에서, 스펄전이 언급하기를,

      바울은 매우 단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이든 확고했을 때 온 맘으로 전진했었습니다. 그가 한번 “내가 작정했다” 라고 말하면, 그의 강력한 액션을 기대 [하실 수] 있을 겁니다…그가 이 동일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 이러한 모습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전에 그가 핍박을 했었을 때, 그는…그의 모든 지능을 다 십자가의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했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얼마나 뚜렷했는지, 얼마나 완전했는지, 그의 새로운 모습을 예상 할 것입니다…[그가 들어간] 예수님의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으면 그의 온 마음과 혼과 힘을 [작정했음을] 십자가의 못 박히신 주님만 알기를 원했습니다 (C. H. Spurgeon, “The Man of One Subject,” The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Pilgrim Publications, 1971 reprint, volume XXI, p. 637).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시작 했을 때, 그리스도의 재림이 설교 주제 였습니다 – 그 이유는 저는 동일한 설교 주제로 회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늙어가면서, 그리고 제가 성경을 더 읽어가면서, 제 자신은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II.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저는 Dr. John Gill의 글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분은 성경 전체의 대한 아홉개의 주석을 쓰셨습니다 –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만약에 여러분이 이 주석책들의 어떠한 부분을 보시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리스도”나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 나 “복음”이란 단어들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Dr. Gill을 비판할 때, “극단적-칼빈주의”로 부르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방법으로 봐야 합니다성경의 중심인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중심인 주제는 번창이 아닙니다. 말도 안됩니다! 예언의 멋있는 말도 아닙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 목적도 아닙니다, 아니면 어떻게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목적도 아닙니다, 아니면 어떻게 자식을 양육하는 방법을 아는 목적도 아닙니다 – 오늘 날 수많은 목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그 어떠한 주제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처음서부터 끝가지! 그리스도 스스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매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13).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도란 주제에 질릴수 있습니까? 어떻게 주님 대해서 들을 때 피곤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대한 모든 주제를 설교 할 시간이 충분하겠습니까? 맏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무엇을 더 생각하며, 무엇을 더 전하며, 무슨 또 다른 일을 할수 있습니까? 아니면 왜 우리가, 예수님으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30-31)?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셨으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설교의 핵심 주제로 삼았다고 Dr. Gill은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울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인격이신 그리스도 대해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인자인 것을, 그리고 진정한 사람인것을, 하나님과 사람인 한 인격인 것을; 그리고 주님의 대한 정체, 그분이 메시아인 것을, 중보자인 것을,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머리, 신랑, 구원자, 그리고 교회와 사람들의 구속자인 것을; 그리고 주님의 역사로서, 은혜의 복들을 얻은 것; 바로 주님의 의로 칭함을 얻었고,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얻었고, 평화와, 화목함과 그리고 주님이 희생으로 대속을 얻었고, 그리고 주님만으로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구원. 바울의 다짐은 오직 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John Gill, D.D., An Exposition of the New Testament,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89 reprint of the 1809 edition, volume II, p. 607; note on II Corinthians 2:2).

Dr. Gill은 그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 대한 주제를 일년동안 주일 설교에 전할 수 있는 충분한 내용들을 기록했습니다 –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평생동안 할수 있는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몇년 전 저는 일곱 번 연속으로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 대해서 설교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저는 그 주제를 깊이 다루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07년도에는 제가 예수님 대해서 열 네번 연속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의 종으로서, 이사야 52:13부터 이사야 53:12까지. 그러나 제가 설교했던 말씀부분에서 더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교훈이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대해서 듣는 것과, 예수님 대해서 읽는 것과, 예수님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의미있고, 도움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Samuel Medley와 완전히 공감합니다, Mr. Griffith가 조금 전 불렀던 찬송의 작가 입니다,

예수님, 나의 마음에 새기소서,
   주님만을 내 마음에 새기소서,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 떠나게 되도,
   주님만, 주님만, 떠나지 마소서!
(“Jesus! Engrave It On My Heart” by Samuel Medley, 1738-1799;
    to the tune of “Just As I Am”).

저는 여러분에게 고린도전서 2:2절을 전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라면, 저는 더이상 도울 수 없습니다. 저는 사도가 언급한 말씀만 전했을 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성경책에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 그러나 여기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또한 오늘 아침 본문말씀의 마지막 부분 대해서 저희가 생각할게 있습니다.

III. 셋째로,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의 말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박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사도들이 전했던 “그리스도의 영”은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과 뼈가 못 박힌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했던 설교의 주제는, 성령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예도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재림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말을 잘 들으세요 – 우리가 성경에서 읽으는 그리스도도 아니었습니다 –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가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글자로서 표현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예수님 스스로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바울은 실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여러분의 죄를 짊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분을 전했던 것입니다 – 실제로 –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을,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4).

실제로 예수님께서 빌라도로부터 채찍질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사도가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박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우리가 최후의 만찬의 예식을 참여 할때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대해서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부활절로서만 여겨도 안됩니다. 이럴수는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기독교의 제일 중심적인 핵심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네 복음서에 자세히 묘사된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사도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리고 서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첫 핵심이었습니다,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가 전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사도행전 2:23).

그리고 사도 바울이 언급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린도전서 1:23).

Dr. John MacArthur는, 이상하게도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하고 이었습니다, 수년동안 주님의 영원한 양자의 신분을 거부하고, 주님의 보혈의 영원한 실제와 효혐을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말을 언급했을 때에는 옳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때 십자가의 관한 설교가 너무 우세해서 믿는 자들이 죽은 사람을 믿고 있었다고 비난을 당했었다” (The MacArthur Study Bible, Word Bibles, 1997; note on I Corinthians 2:2). 오늘 날 현대교회의 신자들이 동일한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에게 이러한 비난이 오길 다 같이 기도합시다 – 그 당시 위대했던 성도들과 순교자들을 비난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사람들이 언제나 예수님을 생각하기를 기도합시다, 신-인,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그리스도 대해서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육욕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그리스도를 질병의 호기심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틀렸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힌 그리스도는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문제입니다! 성경에 중심 주제입니다 – 그리고 어느 남자나 여자가 제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 이 삶에서나 아니면 그 다음에! 이 말을 들으세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혼구원이 이 문제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로마서 5:8-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 값을 치루시려고. 이 진실을 붙잡으세요,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의 생각을 예수님께 향하세요, 그러시면 여러분의 죄는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구원을 얻으실 것입니다! 이 진실을 붙잡으세요, 그리고 주님만 의지하세요, 그러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삶의 폭풍과 슬픔 사이로 인도하셔서 – 하나님의 왕국으로 안전히 동행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그러므로 충분하신 나의 [그리스도]! 나의 왕이시여!
   내가 주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리이다;
영광과 경배가 영원히 주님께,
   이 한 가지만 충분합니다, 예수님!
(“Jesus! Engrave It On My Heart” by Samuel Medley, 1738-1799;
    altered by Dr. Hymers; to the tune of “Just As I Am”).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누가복음 23:32-36.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Jesus! Engrave It on My Heart” (by Samuel Medley, 1738-1799).


설교요약

핵심 주제! 무궁무진한 주제!

(THE MAIN SUBJECT! THE INEXHAUSTIBLE SUBJECT!)

by Dr. R. L. Hymers, Jr.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디모데전서 2:2)

I.   첫째로, “작정하였음이라”의 말씀, 고린도전서 2:2a;
사도행전 9:20, 29; 고린도전서 1:23; 로마서 1:16.

II.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고린도전서 2:2b;
요한계시록 22:13; 고린도전서 1:30-31.

III. 셋째로,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의 말씀, 고린도전서 2:2c;
요한복음 5:39; 누가복음 22:44; 사도행전 2:23;
고린도전서1:23; 로마서 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