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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 1부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 PART I)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Saturday Evening, July 25, 2009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제가 관찰하기에 본문 말씀 후반에 있는 핵심어는 바로 “얻느니라” 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얻느니라”의 의미를 이해하시면 나머지 구절은 자연적으로 풀어질 것입니다. Dr. Strong 이 가리키기를 단어 “얻느니라”는 히브리어로 “laqach” 입니다. 원어의 의미는 “데리고 온다,” “끌어 들어온다,” “환영한다” 입니다.

제가 유리하게 인용하는 사람들을 비평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어느 주석자들은 이 본문 말씀의 의미를 피해갑니다, 그 까닦은 이 핵심어 “얻느니라”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Dr. Ryrie, 제가 매우 존경하는 분인데, 기록 하시기를, “이 문맥에서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인하고 지혜를 전의한다” (Ryrie Study Bible;잠언 11:30의 주석). 그래서, 이 분은 “구원을 얻느니라” 부터 “사람들을 유인하고 지혜를 전의하다”를 분리 하십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유인하고 지혜를 전의해서 그리스도 대해 알리는 것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요소를 분리한다는 것을 저는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Dr. McGee,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동일한 말씀 구절에서 이 분도 주석에서, 기록 하시기를, “오늘 날에는 개인의 간증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형상입니다” (Thru the Bible; 잠언 11:30의 주석). 그러나 잠언 11:30 에서는 “개인의 간증” 대해서 아무 예기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의 간증” 대한 단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증인” 이란 의미조차도 없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여기서는 “간증”을 하라는 것보다 “얻는다”, 바로 “데리고 온다,” “끌어 들어온다,” “환영한다” 입니다. 제 생각에 이 말씀 구절의 대한 Dr. Ryrie 와 Dr. McGee의 문제점은 바로 이 분들이 침례교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은 침례교 관점인 지역교회 대한 중요성이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구약성경 구절을 지역교회의 대한 중심점을 가리키고 있는 신약성경의 빛으로 해석을 하게되면, 이 말씀구절은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사람을 얻는 자는” 바로 방황하는 죄인들을 지역교회로 “데리고 오며,” “끌어 들어오며,” “환영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 2:47절에 명백하게 나와있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7).

그래서, 이 말씀 구절이 가리키는 것은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들이 영혼들을 데리고 오며, 교회 안으로 환영하는 것입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다같이 부정적인 면을 고려 해 봅시다 – 사람을 얻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같이 긍정적인 면을 고려 해 봅시다 – 사람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I. 첫째로, 사람을 얻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간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간증을 하는 것 대해서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이 구절말씀에서는 간증에 대한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간증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이 그리스도 대한 생생한 간증을 듣는 것도 많은 때에는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잠언 11:30절에는 목격을 하거나 간증을 하라는 의미는 없습니다. 반대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다시 말해서, 사람을 얻는 것은 지역을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도하는 것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예기하고 싶은 점은 그냥 잠언 11:30절에는 지역을 다니라는 말이 없습니다. 때로는 크리스챤들은 지역을 다니는 일을 알리바이 로 삼고 있습니다, 핑계로, 더 힘들고 어려운 영혼을 얻는 일을 하기 싫어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다시 말해서, 사람을 얻는 것은 집집마다 가서 사람들과 함께 “죄인의 기도문”을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은 좋은 결과보다 더 나뿐 결과를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 대해서 가장된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은 어떠한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를 인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약성경에 이러한 원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죄인의 기도문”이 어디 나타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성경에서 나온 것 보다Finney의 생각으로부터 나왔다고 봅니다. 아닙니다, 잠언 11:30절에는 “죄인의 기도문”은 없습니다. 이러한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한번 더 – 사람을 얻는 것은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얻어서 “계획을 새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서 현재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매우 효율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행위에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각 예배에 출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이러한 일로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말씀에서는, “지혜로운 자는 이름을 알고 계획해서 연락해라” 라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지역교회 안으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들을 환영하는 자 입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제가 보기에는 현대적인 전도 기술은 실제로 방황하는 사람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 교회안으로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도가 거부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너무 작은 열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너무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지역 교회로 더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우리는 전도를 포기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II. 둘째로, 사람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저는 여러분들에게 “얻느니라”의 의미가 “끌어 들어온다” 아니면 “환영한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간의 자연적 성향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아무 사람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아담의 본성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그리고 예측하게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죄인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이름을 적으며 구역에 다닙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깊은 내면에, 죄인들을 교회안으로 환영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바리새인처럼 만들지 않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며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누가복음 15:2).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서당에 있던 사람들로서 이미 만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을 그들의 삶이나 마음에 영접하기 싫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판하였습니다,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누가복음 15:2).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배푼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이러한 요소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리새인이 묻기를, “내 이웃이 누구오니까?” 예수님은 방황하고 죽고있던 사람과, “그 사람을 돌보아” 주고 있던 사마리아인 대해서 문답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34).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7).

아닙니다! 저는 자유주의 대해서 예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복음적인 “인생 스타일” 대해서 예기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잠언 11:30 대해서 예기 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Dr. B. B. McKinney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통적 사람을 얻는 침례교 이었습니다. B.B. McKinney가 말하기를,

주님, 영혼들을 나의 마음에 두게하소서
   그리고 이 영혼들을 나를 통하여 사랑하소서
또한 감사함으로 저의 도리를 하게 하소서
   이 영혼들을 당신 위하여 얻게 하소서
당신을 위한 영혼들, 당신을 위한 영혼들,
   이것이 저의 진정한 소원입니다;
오늘 저를 도우사 긴 삶의 길을 걷게 하소서
   당신을 위한 영혼들을 얻기 위하여
(“Lord, Lay Some Soul Upon My Heart” by B. B. McKinney, 1886-1952).

우리가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을 의지함으로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D.L. Moody가 말하기를, “그들을 안으로 사랑하라.” Dr. McKinney가 말하기를, “저를 통하여 영혼들을 사랑하소서.” 저는 오늘 밤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셔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후에 교회에 나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방황하는 이들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축복의 통로입니까?
   방황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마음은 타오르고 있습니까?
당신은 죄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찾고 계십니까?
오늘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 주세요,
   나는 기도합니다,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 주세요;
나의 삶을 다스리고, 나의 섬김을 축복하소서,
   오늘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 주세요.
(“Make Me a Channel of Blessing” by Harper G. Smyth, 1873-1945).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전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특송 솔로로 찬양 하셨습니다:
“Lord, Lay Some Soul Upon My Heart”
(by B. B. McKinney, 1886-1952).

설교 요약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 1부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 PART I)

by Dr. R. L. Hymers, Jr.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

(사도행전 2:47)

I.   첫째로, 사람을 얻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잠언 11:30.

II.  둘째로, 사람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복음 15:2; 10:34,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