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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미국 기독교의 죽음의
증인들입니까? – 칠원 사일의 설교

(ARE WE WITNESSING THE DEATH OF AMERICAN
CHRISTIANITY? – A FOURTH OF JULY SERMO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08년7월4일 금요일 저녁 시간에 로스 앤젤레스 태버네클
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 하이머 박사님이 전하신 은혜로운 설교 말씀입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Friday Evening, July 4, 2008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이 본문은 변경할 수 없는 하나님과 영원한 땅위의 약속이 있는 이스라엘 국가를 제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용에 있어서 그 본문은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들을 두는 것입니다. 길박사는 말하기를 그것은 그들[이스라엘]로 제한해서는 안 되고; 그는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다; 이 나라는 선택받은 세대이고, 거룩한 나라와 특별한 나라들이고, 유대인과 이방인들 둘 다이고: 그리고 주님은 이들의 하나님이시다” (요한 길 박사., 구약 성경의 주석, 침례교 표준 출판사, 1989 재판, 제 3권, 664면).

그러므로 미국인들은 한번 자랑할 수 있고 이 요절은 우리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그러나 우리의 말하는 것이 우리들에 의해 말하여 질수 있나요?

알렉시스 데 토큐빌 (1805-1859) 은 프랑스 역사학자였고 그리고 정치 이론가였고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분석가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830년대에 미국을 지나서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미국의 사회의 관찰된 것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 (1835-1840) 라는 이 책 속에 포함하였다. 그 유명한 책에, 알렉시스 데 토큐빌은 기록하기를,

나는 위대함과 미국의 천부적인 것과 그녀의 넓은 항구들과 그리고 그녀의 광대한 강들을 찾았는데 그것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기름진 들판들과 끝없는 대초원들, 그리고 그것은 거기에 없었고; 그녀의 풍부한 광물들과 그녀의 거대한 세계의 통상, 그리고 그것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내가 미국의 교회협의회에 갔고, 그리고 내가 그녀의 강단의 의의 빛남을 들은 후에야 나는 그녀의 천부적인 것과 힘의 비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위대한 것은 왜냐하면 그녀는 좋기 때문이며, 그리고 만약에 미국이 좋은 것을 중단한다면, 미국의 위대함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 인용은 알렉시스 데 토큐빌로부터 나의 가슴을 지나 차가움이 보내집니다: “내가 교회에 가기 전에는 그리고 그녀의 강단들의 의로움의 불꽃은 [미국]의 천부적인 것과 능력의 비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오늘 그것을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레오날드 래벤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바로 이삼일 전에 한 좋은 설교자 형제가 제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이 나라에 더 이상 위대한 설교자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는 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뛰어난 사람이 없고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마지막에 무서운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설교자들을 선물로 가졌으며, 재능이 있는 설교자들, 웅변가 설교자들, 유명한 설교자들, 조직적인 설교자들, 그러나 어디에, 오 어디에, 예언적인 발언으로 국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설교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에는 위대한 설교의 배고픔이 있습니다…양심을 감동시키는 것이 빈곤한 설교, 마음을 깨뜨리는 설교의 빈곤, 영혼을 울리는 것이 빈곤한 설교, 우리의 조상들처럼 설교의 빈곤을 알았고 그것은 온 밤을 깨도록 사람들을 지켰고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켰습니다. 저는 반복하기를, “거기는 주의 말씀의 빈곤이 있습니다” (레오날드 라벤힐, 미국은 죽기에는 너무 젊다, 베다니 친교, 1979, 79면).

미국 역사의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들은 예언들이 없었습니다! 복음의 파티는 모든 시간이 높습니다 (같은 책., 81면).

에이. 더불유. 토저는 말하기를,

그것은 하나의 열린 질문이고 복음적인 운동이 죄를 너무 오랫동안 그리고 영적인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났습니다…그 만약은 큰 문제입니다. 그들이 그럴까요? 아니면 그들이 신약의 믿음으로부터 그들의 슬픈 떠남을 인식하기에는 종교적인 놀이와 거품으로 너무 만족해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나중 것이 진실이면, 그러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오직 심판입니다 (에이. 더불유. 토저 박사., 하나님과 사람의, 크리스천 출판사, 1960, 18-19면).

누가 말할까요? 어디서 그리고 언제 우리의 강단이 “의로움으로 불꽃”이 다시 될까요? 토저 박사는 말하기를,

어떻게 필사적으로 교회가 이 순간에 용기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마치 옛날 저주처럼 두려움은 교회를 덮는 한배를 탄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두려움, 우리의 직업에서 두려움, 유명하여지는 것을 잃는 두려움, 서로를 향한 두려움; 이것들은 유령들이며 그것은 교회의 오늘 날 지도자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끝없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에이. 더불유. 토저 박사., 에이. 더불유. 토저의 최선, 베이커 출판사, 베이커 출판사, 1978, 83면).

토저 박사는 다시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들은 밑으로 이끄는 차가운 계단들에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합니다: (1) 최에 대한 자책감이 없습니다. (2) 회심의 변화가 없습니다. (3) 하나님과 만남이 없습니다. (4) 예배의 주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에이. 더불유. 토레이 박사., 무시함의 댓가, 크리스천 출판사, 1991, 31면).

그리고 제이. 버논 맥기 박사는 말하기를,

교회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나에게 말하는 것을 실패하였습니다. 교회는 나를 잃어버린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을 실패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홀로만이 구원이 있음을 나에게 제시하는 것을 실패하였습니다. 교회는 죄의 무서운 결과, 지옥의 확실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제이. 버논 매기, 성경을 통하여, 토마스 넬슨 출판사, 1983, 제 5권, 924면).

저는 모든 것을 레오날드 래벤힐, 에이. 더불유. 토저, 그리고 맥기 박사가 말한 것을 동의함니다. 그것은 제게는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미국의 교회들이 1835년에 알레시스 데 토큐빌레가 그들을 관찰하였을 때에 멀리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 기독교가 줄어드는 것의 12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1.  독일의 “높은 비평”은 19세기의 절반에 미국 개혁주의의 성경적인 마음을 먹기 시작하였고, 많은 목사들이 성경의 참됨과 오류의 불활실에서 떠났습니다. 스펄젼은 그것의 시작에 이 전투를 싸웠습니다, “내리 막길의 논쟁”을 싸웠습니다 (헬롤드 린셀 박사., 성경을 위한 전투, 존더밴 출판사, 1976; 헤롤드 린셀 박사., 균형에서 성경, 존더밴 출판사, 1979; 더블유. 에이. 그리스웰 박사., 왜 나는 성경이 문자적으로 진리라고 설교하는가, 브로드맨 출판사, 1973).

2.  “결단 주의”는 같은 시기에 “옛 복음주의”를 대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약 1835년 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은 빠르게 옛 성경적인 회심을 대신하였습니다 (참조 아인 에이취. 머레이, 옛 복음주의: 새로운 각성을 위한 옛 진리들, 진리 신뢰의 깃발, 2005; 아이안 에이취. 머레이, 부흥과 부흥주의: 미국의 복음주의 형성과 오점, 진리 신뢰의 깃발, 1994; 그리고 씨. 엘. 캐간과 알. 엘. 하이머스 쥬니어., 오늘날의 배교: 어떻게 결단주의가 우리 교회들을 파괴하는가, 건강의 돌 출판사, 2001판, 온라인에서 가능함. 전체 책을 읽으려면 여기를 크릭하세요).

3.  여성 해방 운동은 이 같은 기간에 점차적으로 많아졌고, 우리의 가장 보수중의 교회들 조차 점점 더 여성의 왕국 아래로 가져왔습니다 – 결과로 군중 속에 남자들과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들 조차도 남자들에 의한 목회가 여성들에 의하여 아직도 조정되고 있고, 그들은 교회의 심리 상태도 좌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보수주의 교회들에도 진리입니다, 다른 교회들처럼 (참조 다윗 머로운, 왜 남자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가, 토마스 넬슨 출판사, 2004; 레온 제이. 포들스 박사., 교회의 중요성: 기독교의 여성화, 스펜스 출판사, 1999).


이 세가지 경향들은 서구 교회들에서 결과들이고, 그리고 특별히 미국에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같은 시기에 젊은 사람들의 88%가 교회들에서 성장하였고 25세 이전에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삼분지 일 정도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출석하는 사람들의 수는 모든 주요 교단들에서 각 십년마다 떨어지고 있습니다. 즉, 남침례교단 협의회의 보고들은,

사람들의 숫자가 남침례교 교회들에서 남침례 교단의 협의회의 낮은 레벨은 1978년 이래 2007년에 삼년째 계속 떨어졌고 토마스 에스. 레이너, 생명길 크리스천 원천의 회장은 말하기를 그 사실에서 도망갈 길이 없고 그것은 남침례교회들이 그들이 전에 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는 것입니다 (“SBC, 캘리포니아 침례교 통계들은 줄어드는 것을 보여 주고: 전국적인 침례교도들은 1987년 이래로 가장 낮게 줄어들었습니다” 랍 필립스, 침례교 출판사, 캘리포니아 남 침레교, 유월 2008, 3면에서 보고 되었다).

그러므로, 한번 번영하는 남침례교들은 교인들이 같은 만큼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은 이십세기가 시작된 이래로 주요 개신교와 침례교단들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는 믿기는 미국 개신교와 침례 교회들에서 퇴보는 제가 이미 말씀드린 세가지 경향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1) 성경의 무오설의 포기, (2) 결단주의, 천박하고 크게 의미가 없는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 그것은 성경적인 회심을 대체하는 것과 (3) 교회들의 여성화, 그것은 주요 교단들로부터 젊은이들과 남자들이 날아가는 주요 이유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른 경향들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성장하는데 문제입니다.

4.  부드럽게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은 모두 그러나 옛날 설교를 대신하고 있으며, 그래서 용감한 복음주의 설교의 본거지로, 그리고 모든 회중의 복음주의를 양성하기보다 여성화한 장소의 교회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날 많은 근본적인 침례교회들에서 설교 조차 여러분이 자유주의 감리교에서, 자유주의 장로 교회 또는 감독 교회에서 듣는 것과 약간 다릅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점검하여 보세요!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깊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5.  기도 모임들은 크게 특별한 흥미있는 그룹에 의해 주중 예배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과거의 기도 모임은 빠르게 현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6.  현대 음악은 교회들에서 복음주의적인 설교보다 지배적인 매력이 되었습니다. 음악이 복음주의 설교를 대신하는 것으로 설교 자체는 뒷 무대로 밀려 났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적 설교가 전에 있었던 것처럼 예배들 중앙에 있는 대신에 “예배 경험들”에 참석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수천의 미국 교회들은 복음주의 적인 설교를 모두 포기하였습니다. 이 접촉은 약간의 “메가 교회들”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평균적인 회중들 속에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교회 밖으로부터 젊은이들을 복음화하기를 강조하는 것은 오락으로 대체되고 있고, 쓸모없는 시도는 그 젊은이들의 약간은 적어도 지키는데 그들은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투표들은 이 접근은 실패한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교회 밖으로부터 잃어버린 젊은 사람들이 반드시 이끌려 와야하는데 전통적인, 크게 때리는 복음적인 설교를 통하여 이끌려 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만약에 우리들이 그리스도께로 교회 안나가는 사람들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교회들은 죽을 것입니다.” 그것은 더욱 오락적인 것 조차 대답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같은 것의 이상이 됩니다, 그리고 통계학들은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다고 보여 줍니다. 젊은이들과 남자들은 오락이 아닌 도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없이는 맹렬하게 후퇴됩니다, 우리들은 반드시 남자들과 젊은이들의 위대한 출애굽 조차 기대하여야 하며, 그들은 하나님을 안믿는 사회와 백병전에 직면하는 도전을 원하는 것입니다, 활기찬 사람과 강단의 복음을 통하여서 말입니다.

8.  연로한 사람들을 지키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내용의 줄어드는 그룹 대신에 그들을 도전에 직면하게 하고 죽어가는 문화에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옛날 설교자들의 본래의 복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9.  진정한 회심들은 의미없는 “결단들”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열심있는 영혼을 건지는 자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사실 그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자들에게 불의 복음적 설교를 듣도록 이끄는 일을 하는 자들이며,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그들 중의 얼마를 잘 회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0.  주일 저녁 예배는 복음적 설교의 강력한 본거지였고 교회들의 증가하는 숫자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주일 저녁에 아무 의미없이 하는 것으로 젊은이들과 남자들을 떠났습니다

.

11.  주일 저녁 복음적인 예배가 그의 바른 장소에 회복되지 않고는 교회들은 다시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점심후에 더 많은 성경공부로 다시 채웁시다, 많은 교회들이 지금 하고 있습니다, 오직 복음의 설교를 듣도록 주일 저녁에 세상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기회의 빼앗는 교회들입니다. 주일 저녁 예배들을 포기하는 것은 교회들에 사람들을 추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줄어드는 이유의 한 부분입니다.

12.  십자가의 도전은 연약한 가르침과 효과가 없는 프로그램들로 대신하고 있고 그것은 강력한 십자가의 영으로 우리의 죽어가는 문화에 직면하여 교회의 남자들과 젊은이들을 약간 도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아주 잘 응답하며 만약에 기회가 주어지면, 그러나 그들은 여성화되는 것에 응답하지 않고 있으며, 물을 주는 프로그램들은 그들에게 오늘날 주어지고 있습니다

.

13.  목사들은 그들 자신들이 자주 “복음적인 사역을 하는” (딤후) 대신에 사장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자주 있습니다. 목사들은 잃어버린자를 전도하는 “사역”을 하는 대신에 약간의 노인 여성들과 그리고 약간의 작은 어린이들 이미 그의 교회에 출석하는 자들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

오직 그것은 우리들이 우리의 즐거움에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거의 보주주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유대인)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3).

우리 교회들과 우리 나라는 더 큰 위기에 있을 것인데 만약이 그것이 멀리있는 사실이 아닌데 그것은 거의 모든 복음적인 크리스천들이 기도하고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대 주를 협력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들이 약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축복하시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스라엘의 특별한 부분의 주를 그리고 일반적인 유대 사람들과 연대의식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새 대통령을 와싱톤에 갖게 된다면 그는 이스라엘을 후원하는데서 돌아선다면, 저는 우리의 날들을 두려워하는데 위대한 나라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유대인]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창 12:3).

우리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후원합니다. 슬프게도, 그것은 이것이 오직 한가닥 실로 되고 그리고 오랜 본문을 우리에게 묶게합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33:12).

결 론

다른 나라들은 우리들이 지금 선포하는 그 원문이 더 능력이 있는가 마치 그들 자신들의 것처럼? 그것이 그렇다면 저는 두렵습니다.

1.  한국은, 작은 나라로서, 지난 몇 주전에 미국과 카나다의 합한 외국 선교사의 숫자(퍼센트가 아니고 실지 숫자입니다)가 넘었는데 그들은 세계에 선교하러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지구를 통틀어서 외국 선교지에 우리가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인도차이나는 오늘날 권능의 부흥들의 경험이 있고, 그것은 미국이 1859년 이래 본적이 없는 것입니다!

3.  차이나 자신은 현 시대에 어떤 나라의 영혼들의 가장 큰 집회의 중간에 있습니다. 프랭클린 그래함은 근래에 중국에서 130만 크리스천들의 작게 추정하는 것을 주었습니다 (결단하는 잡지, 칠월/팔월 2008, 13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기독교의 폭발하는 것을 연구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훨씬 높은 숫자를 줍니다. 그것은 매주 칠일 매일마다 24,000명,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는 약 1,000명의 중국인들이 회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1859년 이래 들어본 적이 없는 부흥의 종류입니다. 중국은 현 시대에 어떤 나라의 가장 위대한 부흥의 가운데 있습니다 (참조 다윗 아이크맨, 베이징에서 예수님: 어떻게 기독교가 중국에서 변화되셨고 그리고 능력의 세계적인 균형이 바뀌고 있는가, 레젠시 출판사, 2003; 순교자들의 음성으로부터 가능함, P.O. Box 443, Bartlesville, OK 74005, (918)337-8015; 웹싸이트 (website) at www. persecution.com.).

4.  아프리칸 교회들은 도덕과 복음주의의 문제들에서 서구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많은 감독교회들은 유명한 카나다 신학자 제이. 아이. 패커를 포함하여 감독교회를 떠나고 있고, 그리고 그들 자신을 아프리카의 감독의 권위 아래 그들을 두고 있는데 카나다와 미국에서 그들의 교단의 도덕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중미와 남미 교회들은 그들 나라에 낙태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그리고 다른 사회적인 악법을 금지시켰는데 교회들이 미국에서는 교회들이 그런 것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제삼 세계”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역사속에 이 지점에서 미국이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의를 우리 본문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제게는 보이는 것입니다.

미국이 죽음의 문화속으로 그 미끄러움의 사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바 하나님이 새 나라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곧 말해 줄 것입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그것은 지금 미국을 구원하는 하나나 둘의 부흥보다 다 많은 것을 가져 올 것이고 우리들이 아는 바와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개혁을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들은 개신교의 개혁자들의 “오직”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그들을 우리의 설교외 우리 교회들에 우리의 복음에 힘차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미국에서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그것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말하기를 그것은 복음주의자가 우리 나라에서 죽어가고 있고, 그리고 그것은 서구 문명의 끝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유 3) 거절하는 것을 위하여 무거운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조들의 회심을 중앙에 둔 믿음,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믿음의 진지함으로부터 돌아서 버린 문화에서 혹독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처칠이 그의 경호원에게 말했듯이, 눈물이 그의 얼굴에 흘러 내림으로, 그가 세계 제 이차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에 어두운 날들에서 수상으로 뽑혔을 때에, “저는 그것이 너무 늦지 않은 것을 희망합니다. 저는 그것을 매우 많이 두려워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우리의 최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루칵스 박사., 그 결투: 10 오월 – 31 칠월 1940년, 처칠과 히틀러 사이의 팔십일간의 격투, 티크놀 그리고 필드, 1991, 7면)

그리고, 그 이후의 모두, 그것은 정확하게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이 불확실한 시대에 무엇을 하기를 기대하시는가 입니다. “우리들은 오직 우리들의 최선을 달할 수 있습니다.” 이 2008년 칠월 사일에, 그것은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을 향한 저의 도전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지 우리의 사랑스런 나라에, “우리들은 오직 우리의 최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로스 앤젤레스를 계속 복음화합시다. 우리들은 계속 소리칩시다, 예레미야가 했던 것처럼 이 시간에 우리 교회들과 우리 나라를 파괴하려는 것들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우리들의 하는 것을 도우시도록 그렇게 합시다.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하이머 박사님의 설교를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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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그리피스 박사가 독창곡을 설교 전에 부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룻 케이 존스 작,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