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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심장
(복음적인 설교 제 3편)
(A PIERCED HEART)
(SERMON #3 ON EVANGELISTIC PREACHING)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08년5월 18일 주일 아침 시간에 로스 앤젤레스 태버네클
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 하이머 박사님이 전하신 은혜로운 설교 말씀입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May 18, 200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제 1차 영적 대각성은 1737년에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그의 책, 수백 명의 영혼들을 회심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의 믿음의 이야기, 그의 책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이삭 왓츠 박사는 유명한 찬송 작가이며 그리고 요한 거이스 박사는 에드워즈의 책의 처음 판의 서론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시어 구원을 위한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진노의 위험한 죄의 감정의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요나단 에드워즈, 진실한 진리의 깃발, 1992년 판, 제 1권, 345면).

모든 진정한 부흥들은 사람들의 죄의 깊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1859년 부흥의 목격자들은 말하기를,

한 가장 유력한 기록은 죄의 압도적인 감각이 있었고… 거기에 나이 많은 희색머리의 사람들과 여인들, 젊은 청년들과 여인들이 눈물 흘리고 흐느껴 울고 마치 그들의 마음들이 슬픔으로 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59년과 60년대 부흥의 기억들, 대학 출판사, 1910, 12권, 90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한 부흥에서 일어났고 또한 그들이 회심할 때에 개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죄의 감각은, 더 크거나 또는 적거나, 대체로 진정한 회심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설교할 때에 일어난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방법이고 평범한 방법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심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

헬라 단어는 “찔렸다”로 번역된 것은 “날카로운 것으로 찔러 구멍을 뚫었다”는 의미입니다. 아픈 감정을 사용하였고 그것은 심장을 뚫었다는 것이고 마치 찔린 것과 같습니다” (프릿즈 리에네커, 신약에서 언어상의 핵심, 존더밴 출판사, 1980, 사도행전 2:37 주석).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행 2:37).

그들은 아픈 감정을 경험하였고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설교를 마치자 그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아픔 감정으로 그들을 부르짖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저는 어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이 아침에 여기서 그의 마음이 찔림을 받고 그리고 그 자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찌할꼬?” 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이 아침에 제 주제는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네 가지의 생각들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째, 그것의 필요성; 둘째, 그것의 부재; 세째, 그것의 영향; 그리고 네째, 그것의 의미입니다.

I. 첫째, 찔림의 필요성.

스펄젼은 말하기를,

구원의 효과는 언제나 그 마음의 찔림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위대한 많은 영향들은 그들의 마음을 향한 설교자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축복은 그 설교자가 바로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구원의 효과는 반드시 그들의 마음에 만들어져야하며 왜냐하면 모든 진정한 종교는 반드시 거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씨. 에이취. 스펄젼, “가슴을 찌름,” 1978 재판, 14권, 254면).

“모든 진정한 종교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디서요? 마음속에서. 머리가 아니고 가슴입니다. 저는 지산 주일 아침에 말씀드렸는데 사람의 문제는 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의 문제는 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복음의 사실들을 단지 믿는 것은 어떤 사람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심은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롬 10:10).

성경에, “마음”은 사람의 속 생명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양심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죄에 의해 부패 되었고 타락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말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여러분의 마음의 안의 속임과 악함은 여러분을 진리에 대하여 눈멀게 하고, 그리고 여러분을 자신을 속이는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일반적인 방법은 죄인들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 회심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에 의해 꾸짖고 책망하고, 그의 죄의 회심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책을 느끼게 합니다. 제네바 성경 주석은 요한 복음 16:8에서 말하기를, “말씀의 설교에 의해 하나님의 성령이 아주 능력 있게 역사합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그것의 자신의 불의를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599 제네바 성경, 톨리 레게 출판사, 2006 재판, 요한 복음 16:8). 하나님의 성령의 뉘우치게 하고 책망하는 사역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실들의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에서 단지 정신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속이는 것과 심하게 악하고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한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빠르게 짤려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에서 행동은 – 여러분의 양심에 찔릴 때까지, 그리고 여러분이 사실로 얼굴과 얼굴을 가져왔을 때에 그것은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것과 여러분의 죄 속에 잃어버린 자라는 것, 여러분 자신의 속임 속에 뒤틀려있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자포자기한 사악함속에 파멸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

그리고 저는 이 찔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가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회심의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회심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거짓 회심이 있고, 오직 공허한 직업과, 오직 죽은 “결심주의”만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행 2:37).

II. 둘째로, 찔림이 결여 됨.

스펄젼은 말하기를,

만약에 그것이 진정한 마음의 사역이 아니라면, 그것은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많은 퇴보가 그들이 모래 위에 쌓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깊은 기초 사역이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 그 마지막 사역은 하나님의 제설차들은 양심속의 아주 깊게 있고…그것은 완전히 양심의 가책이고, 단지 믿음의 전문가가 아니고, 그것은 끝까지 인내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감명이 마음을 찌르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그것은 오직 변천하기 쉬운 것이고[일시적인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사라질 때에, 마귀는 그것에 올 것이고, 아마도 사람들은 가장 움직이기 힘들 것이고 그들은 수없이 여러번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였고…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그들은 복음에 대하여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접촉하려면 아주 중대한 상태입니다 (스펄젼, 같은 책, 256-257면).

하나님의 영의 찌름이 없이는, 회심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암 7:8; 8:2).

그리고 그 날에, 더 이상 양심에 찔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영원히 돌 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곁을 지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을 것입니다. 지금, 영원히, 복음은 될 것입니다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2).

만약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떠나시면 여러분의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에 대한 양심의 찔림이 없이 떠나시면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말씀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주실 것이며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롬 1:28).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비난을 주실 때에, 여러분의 굳은 마음은 보물이 되어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롬 2:5-6).

여러분의 양심이 더 이상 찔림이 없을 때에, 여러분은 살아 있는 죽은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2).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

III. 세째, 이 찔림의 영향.

그들의 마음들의 찔림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밖으로 나옵니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본문의 두번째 절반은 대답을 줍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들의 양심의 찔림은 그들을 울부짖게 만들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아무도 어떤 진정한 감정이나 원동력으로 말하지 않을 것인데 그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그의 마음이 찔림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그는 그가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지를 아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그 대답을 안다고 그는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헤아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생각할 것인데, “만약에 저는 이것을 바로 행하고, 그리고 이것을, 저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의 찔름의 죄의 가책이 올 때 그의 마음은 정직하게 외치는 것으로,

“[제]가 무엇을 할까요?”

우리들은 복음의 신조를 넘고 넘어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양심에 하나님의 성령의 찌름이 없이는 그것은 조금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상처 받을 때에, 우리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듣게 될 것이며, 그의 죽으심에 대하여 여러분의 죄 값의 갚으심처럼, 여러분의 비열함을 그의 피로 씻음을 받는 것에 대하여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짓밟지는 않을 것이나, 여러분은 아직도 그에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들이 말하는 것으로부터 구원의 도움이 없는 것을 받게 되고, 여러분의 마음이 찔릴 때까지,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과 삶의 큰 악을 맑게 하는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5-6).

놀라움과 떨림으로 그가 말하기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6).

이것은 정확하게 빌립보에서 간수장에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는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29-30).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러므로, 그것은 분명한 것으로 여러분의 양심의 찔림은 여러분을 느끼도록 인도할 것인데 그것은 여러분이 어떻게 구원받는지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여러분을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알지 못할지라도 느낄 것인데, 그러나 여러분은 복음의 무지한 것처럼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맹인처럼, 마치 신앙이 없는 것처럼 한번도 교회에 온 적이 없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서 나긋나긋하게 그리고 가르치기 쉬운자로 만들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 죽임당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찔림을 받고, 여러분은 겸손과 술취하지 않음과 그리고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IV. 네째로, 이 찔림의 으뜸 의미.

거기에 여러 길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죄인들을 찌르는 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자주 그는 어떤 특별한 죄의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은 과거의 헌신을 가졌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아마 그것을 하실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여러분의 마음을 찌름과 여러분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어떤 것을 여러분에게 기억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사람이 그의 바로 본성이 죄에 가득함을 느낄 때에 깊이 찔린 것은 자주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느낌이 오는 것이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 1:6).

그러나 주요 방법은 하나님이 양심을 찌르는 것은 오순절에서 베드로의 설교 속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

“이것”이 무엇이 입니까? 3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저희가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행 2:37).

우리들은 이 말씀들을 설명하고 위대한 돌보심은, 우리들이 정의가 나타나고 또는 반 유대풍의 죄를 시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베드로가 십자가에 개인적으로 못 박힌 것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거의 모두는 순례자들이었고 그들은 최근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유월절의 향연을 위해 아주 최근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많은 자들은 개종하였고, 유대인의 부모들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축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로부터 유월절 후에 오십일이 지났습니다. 거의 그들의 모든 사람들은 유월절을 위해 왔고 집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이 사람들의 거의는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로마 병사들 조차도, 본디오 빌라도 밑에 있던 그들은 실지로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할 때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자를,” 그는 말하기를 어떤 것을 아주 깊게 그리고 더 지적이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말할 것이고 그리고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모든 인류의 죄들을 달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는 십자가의 못 박힌 사건의 증인으로 말하기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1-12).

이것은 그가 말할 때에 베드로가 말한 것으로,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이것은 그들의 양심들이 찔린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해 인류에 의해 그처럼 그들에 의해 찔리심을 잘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믿기는 어찌하든지 희미하게, 그들은 복음의 진리의 어떤 인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스펄젼은 말하기를,

그러나 그 최고의 도구는, 제가 생각하기는, 그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의 마음속에 찔림을 위해 사용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사랑입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상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십자가처럼 치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발견할 때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에서 나오는 것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죄들을 그에게 지우셨으며…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장소]에 죽으셨습니다…우리 죄에 의해 찔리신 그분을 보시면, 우리들을 그 이야기에 울게 만드는 것입니다…예, 피 흘리신 구세주는 사람의 마음에 피 흘리게 만드시고; 그가 찔림을 받으실 때에 그들은 찔렸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그것은 나의 심장이 찔림을 받는 것은 저를 위해 그의 아주 사랑하는 아들이 죽게 내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금 여기 하나님의 선택하신 어떤 것을 이처럼 조명하시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것은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들이고 그리고 그들을 상처받은 구세주께로 인도하고, 그리고 그들을 알게 하고 그것은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태초에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을 것이고 시간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스펄젼, 같은 책, 260-261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의 생각들이 오순절의 그 사람들의 마음들을 꿰뚫었고, 그리고 그들은 그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뚫었고, 마치 여러분이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여러분의 장소에, 여러분의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옛날 요한 뉴톤이 그것을 그의 찬송 중에 하나에 기록한 것처럼,

저는 나무에 달린 한분을 보았네,
   고통 중에 그리고 피 흘리심에;
그는 그의 고통에 가득찬 눈을 나에게 고정 시켰네,
   마치 십자가 가까이에 저는 서있네.
오, 그것이 나무 위에 둘 수 있나
   구세주가 날 위해 죽으셨네?
나의 영혼이 부르르 떨고 있네, 나의 영혼이 가득찼네,
   그가 날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하네.

나의 양심이 느끼고 그리고 죄의식을 가지네,
   그리고 실망에 날 담그네,
나는 나의 죄를 보았네 그의 보혈을 흘리셨네
   그리고 거기서 그분을 못 박는 것을 도왔네.
오, 그것이 나무 위에 둘 수 있나
   구세주가 날 위해 죽으셨네?
나의 영혼이 부르르 떨고 있네, 나의 영혼이 가득찼네,
   그가 날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하네.
“그는 날 위해 죽으셨네” (요한 뉴톤, 1725-1807).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이 죄의 무서운 형벌로부터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여러분 대신하여 예수님이 죽으신 것의 생각에 의해 찔림을 받는 것이고, 그리고 그분께 나와서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쉼을 받게 될 것이고, 완벽한 약은 찔림의 양심이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하이머 박사님의 설교를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매주 인터넷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설교 사본”을 크릭하시기 바랍니다.

크레이톤 챈 박사님이 설교 전에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2:32-37.
벤자민 그리피스 박사가 독창곡을 설교 전에 부르겠습니다:
“그는 날 위해 죽으셨네” (요한 뉴톤, 1725-1807).


설교 요약

구멍 뚫린 심장
(복음적인 설교 제 3편)
(A PIERCED HEART)
(SERMON #3 ON EVANGELISTIC PREACHING)

by Dr. R. L. Hymers, Jr.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I.   첫째, 찔림의 필요성, 롬 10:10; 렘 17:9; 요16:8.

II.  둘째로, 찔림이 결여 됨, 암 7:8; 8:2; 눅 19:42; 롬 1:28;
2:5-6; 엡 2:12.

III. 세째, 이 찔림의 영향, 행9:5-6; 16:29-30.

IV. 네째로, 이 찔림의 으뜸 의미, 사 1:6; 행 2:36; 요일 2:2;
사 53:5; 롬 1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