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Sermon

이 웹사이트의 목적은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 특히 성경학교나 신학교가 많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무료로 설교원고와 영상을 제공함에 있습니다.

이 설교 원고는www.sermonsfortheworld.com을 통해서 매년 221개 이상의 국가들과 약 1,500,000대의 컴퓨터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YouTube에서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영상을 시청하고 있으나 그들은 곧 YouTube를 통해 우리 교회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YouTube를 통해서 사람들이 우리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46개의 언어로 매달 120,000대의 컴퓨터를 통해 번역되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저작권이 없으므로 별도의 허락없이 설교자들은 원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과 힌두교 국가들을 포함한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달 기부금을 통해 함께 동참하시길 원하시면 이 곳을 클릭하시길 바랍니다.

Dr. Hymers 에게 이메일을 쓰실 때에는 어느 나라에 사는지 반드시 알려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답장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Dr. Hymers의 이메일 주소는rlhymersjr@sbcglobal.net 입니다.




노아의 시대 – 제 3부
(창세기 설교 제 14편)
(THE DAYS OF NOAH – PART III)
(SERMON #14 ON THE BOOK OF GENESIS)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07년 8월 18일 주일 저녁 시간에 로스 앤젤레스 태버네클 침례교회
에서 하이머 박사님이 전하신 은혜로운 설교 말씀입니다.

A sermon preached on Saturday Evening, August 18, 2007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이것은 “노아의 시대”에 대한 제가 설교했던 세번째 설교입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들은 대홍수 전의 노아가 살았던 시대와 비슷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가 노아가 살았던 그 시대와 비슷하다는 것을 여섯 가지로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만약에 여러분이 창세기 4장, 5장, 6장을 읽어보면 우리들이 역사의 종말에 살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저와 같이 동의 할 것으로 믿습니다. 성경의 이 세장들은 노아의 시대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시대를 그때와 비교할 수 있고, 그리고 우리의 세상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이 주제로 첫 두편의 설교들에서 저는 다음 것을 보여 드렸는데,


(1)  그것은 배교의 시대였습니다 – 한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떠났던 것입니다.

(2)  그것은 광범위한 여행의 시대입니다 – 사람들이 주위를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3)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시대입니다 – 진정한 회심을 거절하고 그들의 마음들이 아주 단단하게 되어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4)  그것은 여러번 결혼하는 시대입니다 – 사람들이 한 사람과 결혼하는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때입니다.

(5)  그것은 마귀의 점령이 아주 넓은 범위로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6)  그것은 계속적인 마귀적인 생각의 시대입니다.


자, 이 저녁에, 저는 우리 시대와 노아 시대 사이의 세 가지 더 비슷한 것들의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1)  그것은 음악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2)  그것은 큰 폭력의 시대입니다.

(3)  그것은 강력한 설교가 거절되는 시대입니다.

I. 첫째, 노아의 시대는 음악에 큰 흥미를 가진 개성입니다.

함께 창세기 사장 이십 일절을 폅시다: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세기 4:21).

이것은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하는 악기와 음악에 대해 처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시 기억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오늘 날 음악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날 제가 어렸을 때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여러분이 들어가는 거의 모든 건물에 있습니다. 음악은 엘리베이터에도 있습니다. 음악은 여러분이 운전하는 자동차에도 있습니다. 제가 매일 공원을 걸을 때도 음악, 음악, 음악을 듣습니다. 제가 체육관에 가서 수영을 할 때에도 건물에서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작업실, 그리고 사워실에도 있습니다. 음악은 우리에게 레코드 테이프로, 시디로, 라디오로,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영화들로부터 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자동차에서 크게 음악을 듣고 그것은 여러분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63년으로 돌아가 보면 엠. 알. 데한 박사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음악, 음악, 음악 – 어디에나! 삐꺽 삐꺽 그리고 공허한 신음 소리들 그리고 어린아이 말 그리고 원숭이의 끙끙 거리는 소리들, 우리들은 사람들이 거의 완전히 미친 것을 읽는데 현대 째즈의 반복하는 스윙의 철자 아래 있는 것이다…예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계셨는데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노아의 시대를 비교 하셨습니다 (엠. 알. 데한 박사, 노아의 시대, 젠더밴, 1963, 46-47면).

데한 박사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그것은 음악의 곁들임이 없이는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음악으로 우리들의 상품을 팔고, 우리들은 음악에 의해 우리들의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들의 교회들과 거룩한 장소의 구역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음악으로 대체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합창들, 사악한 영혼들은 복음을 위한 사람들의 마음들을 추상적으로 준비합니다. 공허한 구절들은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재스의 스윙과 당긴 음은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밑으로 깨어질 때까지 그 변형과 상상으로 그들이 하늘로부터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예, 사실이다! “그것이 그렇듯이…그것이 그럴 것이다…” (같은 책).

데한 박사는 이 말들을 거의 사십년 전에 기록하였으며, 1963년대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진실이고, 그리고 그것은 오늘 날 더욱 진리입니다. 그것들은 증가되었고 그가 “어리석은” 음악이라고 불렸던 것은 교회들에서 거의 모든 예배들의 절반이 넘게 이 알맹이 없는 말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것의 많은 부분이 단지 명백하게 지루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멜로디”또 다른 다섯 반복 절이 있습니다. 셋이나 또는 네개의 긴 복음속의 숫자들은 김빠진 것과 동반하고 있으며 명확하게 음악을 통조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제가 틀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 예배의 좋은 음악을 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적당함으로. 그러나 저는 거의 모든 음악은 회중들이 부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들이 단지 복음송이 아닌 진정한 찬송을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삭 왓츠, 챨스 웨슬리, 그리고 다른 찬송들, 첫째, 두번째 대각성에서 진정한 부흥의 시대의 찬송을 부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II. 둘째로, 노아의 시대는 큰 폭력의 특성이었습니다.

창세기 육장, 십일절을 폅시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1-13).

세계 일차 대전이후로 인류는 점점 더 악하여졌습니다. 지난 60년은 역사속의 어떤 다른 시대보다 더 악해진 특성을 가졌습니다. 창세기 사장 이십 삼절은 우리들이 노아 시대에 악함과 살인의 대한 묘사를 보게 됩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 4:23-24).

엠. 알. 데한 박사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에게 창세기 육장의 앞으로 발전될 시대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살인과 폭력의 시대였고 그리고 흉악한 범죄들과 정당한 이유가 없는 살해의 시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해석이 필요한가요? 역사 시대이래 오늘 날 보다 더 잔인하고 이유 없는 흉악함이 기록된 적이 있을까요? 그것은 유아기적인 시대입니다. 모든 신문들은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은 아주 경종을 울리고 있고 사람들은 빗장 도어와 자물쇠와 열쇠 뒤에서 살고 있고 대낮에도 공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오직 도시 뿐만 아니라 시골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은 우리 거리에서 안전하지 않으며, 그리고 어린이들은 이 악한 시대에 사디스티적이고 비인간적인 경향을 대항하여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심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제는 비참한 한 가지이고 그리고 우리들은 모든 자세한 것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신문들을 읽게 되고 그리고 범죄들이 놀랍게 증가되고 있는 통계학의 연구는 특별히 청소년[젊은이들]들 사이에 있고,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보게 되고, “그것은 노아의 시대처럼, 그리하여 인자의 오실 날이 가까움을 보는 것입니다” (동일한 책, 48-49면).

우리 세대의 폭력은 세계 제 2차 대전 이전의 시대와 완전하게 다르며 그리고 특별히 세계 제 1차 대전 이전과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오늘 날 우리들이 보는 폭력에 대하여 언제나 있었다고 말할 것이나 그러나 그들은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제 자신의 기억으로는 폭력은 놀랄 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9.11 사건 이전에는 미국인들은 계속적인 테러리즘과 원자핵 공격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계속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으로 계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전례가 없는 폭력과 테러리즘이 우리 시대의 모든 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III. 세째로, 노아의 시대는 강력한 설교를 거절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대홍수전의 시대에 두 위대한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에녹과 노아였습니다. 그들의 설교의 주제는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보여 줍니다. 여러분의 성경 유다서 14절을 펴서 읽으십시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서 14-15).

에녹은 죄에 대하여 아주 강력하게 설교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심판과 그리고 마지막 심판을 아주 강력하게 설교하였습니다. 그는 지옥을 설교하였습니다. 이것들은 에녹은 대홍수전에 설교한 주제이고: 심판과 지옥의 저주입니다. 에녹은 이 주제를 대홍수전에 반복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이제 베드로후서 2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노아의 설교에 대하여 읽는데 5절입니다:

“옛 세상[홍수 이전의 시대]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 2:5).

마치 에녹처럼, 노아도 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성경 교사나 한 영감의 동기 부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니오! 그는 의로운 설교자였습니다. 헬라어 단어 “케럭스”가 “설교자”로 번역되었는데 그 뜻은 “대중에게 외치는 자, 선포하는 전령자이다” (스트롱 사전, #2783, 2784). 이것은 마지막 시대의 “교사들”로부터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스승들”이란 단어는 여기서는 헬라어의 “디다스카로스”로부터 왔습니다. 그 뜻은 “가르치다”의 의미입니다 (스트롱 사전, #1320, 1321).

우리들은 설교 (마치 타운의 외치는 자처럼 선포하는 것)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경험하며, 그리고 “가르침”으로 설교를 대신하며,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날의 교회들의 특성입니다 (참조. 딤후 4:2-4).

데한 박사는 이런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시 한번 지적하는데 지금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중심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치 홍수 이전과 같아서, 그래서 그의 재림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듯이 홍수 이전에 노아의 시대가 큰 속임의 시대가 있을 것입니다. 에녹의 능력있는 설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노아, 세상은 이들 설교자들을 믿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홍수가 올 때에, 오직 여덟 사람만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같은 책, 56면).

에녹이 심판이 올 것을 설교하였습니다. 노아는 의와 심판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는 홍수 심판이 올 것을 설교하였습니다 (참조 벧후 2:5; 히 11:7). 그들 좋은 두 설교자들이 말하였으나 거의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전혀 오지 않을 것처럼 계속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심판을 여러분을 준비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설교자에게 귀 기울이고 회개하시겠습니까? 구원의 방주로 당신은 나오시겠습니까 – 그리스도께로?

저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데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죄 값을 지불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여러분은 반듯이 그리스도께, 자신께로 실지로 나와야 하며, 아니면 여러분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리고 마치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처럼 지옥에 가고 말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설교 끝)
여러분은 하이머 박사님의 설교를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매주 인터넷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설교 사본”을 크릭하시기 바랍니다.

크레이톤 챈 박사님이 설교 전에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창세기 4:21-24; 6:11-13.
벤자민 그리피스 박사가 독창곡을 설교 전에 부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루쓰 카이 존스 작, 1944).


설교요약

노아의 시대 – 제 3부
(THE DAYS OF NOAH – PART III)
(SERMON #14 ON THE BOOK OF GENESIS)

by Dr. R. L. Hymers, Jr.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

I. 첫째, 노아의 시대는 음악에 큰 흥미를 가진 개성입니다,
창세기 4:21.

II. 둘째로, 노아의 시대는 큰 폭력의 특성이었습니다,
창세기 6:11-13; 창세기 4:23-24.

III. 세째로, 노아의 시대는 강력한 설교를 거절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유다서 14-15; 벧후 2:5; 딤후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