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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부터 배우는 복음적인 설교

이 설교는 하이머스( Dr. Robert Hymers)

LEARNING TO PREACH EVANGELISTICALLY FROM CHRIST
by Dr. Robert Hymers

목사님이 2005년 12월 11일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로스 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전하신 설교입니다.

A sermon preached on Lords Day Morning, December 11, 2005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한 복음 7:14, 19).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요한 복음 7:2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한 복음 7:37).


여기 요한 복음 7장에 우리는 주목할 만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작에서 저는 이 기회에 우리들이 오늘날 듣는 설교로부터 아주 다른 주님의 복음적인 설교에 대하여 몇 가지 내용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저는 이것을 "들판 설교," 또는 야외 설교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야외 설교의 부류는 우리 시대에 크게 듣지 못하는 것이나, 그것은 18세기와 19세기 초기의 세 번의 대각성 기간에는 아주 빈번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외 설교는 부흥과 각성의 모든 시대에 실질적으로 위해한 설교의 우량 보증서의 하나이다. 웨일즈의 죠지 휫필드와 호웰 헤리스는 첫 번 각성운동에서 야외 설교의 주인공들이다. 두 번째 대각성때에 디모데 드와잍, 아사헬 네트레톤, 크리스마스 에반스, 그리고 다른 위대한 설교가들은 자주 야외에서 설교하였습니다. 무디와 위대한 스펄젼은 가끔씩 우리 주님의 교회 빌딩 밖에서 설교하는 모델을 쫓았다. 수많은 군중들은 야외에서 그 설교를 들으려고 몰려왔던 것입니다. 나는 특별히 세 번의 위대한 영적 각성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야외 설교가 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적어도 얼마간의 모임에서 사용하셨습니다. 특별히 세 번의 대각성에서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모임에서 야외 설교를 사용하시지 않은 많은 역사적인 부흥을 알지 못합니다. 저 자신도 나의 초창기 설교는 야외 설교였습니다. 저는 요한 웨슬리의 요약 본을 읽음으로 매우 영감을 받았습니다(무디 출판사 출간), 그가 휫필드와 함께 있을 때 우리 주님이 그 당시에 유대의 명절에 성전에 동행하신 것처럼, 들판에서 일반 대중에게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7장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두 번째 것은 저는 여러분에게 알려 드릴 것은 요한 복음 7장에서 그리스도의 설교들은 우리가 오늘날 아는 것처럼 성경 공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일반 대중들은 성경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몇 권의 성경 사본이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오직 성전에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이 보기 위해 성전에서 성경을 가지고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그의 손의 성경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 강단의 제한된 공간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강단 뒤에서 인쇄된 성경으로 설교하는 것을 낮추어 보거나 격하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예수님이 야외설교에서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복음서의 어디에서도 한 번이나 두 번, 예수님이 나사렛의 성전에서 이사야 선지의 두루마리로 설교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누가복음 4:16-30). 그리스도는, 나의 지식으로는, 오직 그분의 초창기 목회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일반적인 방법은 성경으로부터 본문을 선택하고 그리고 기억으로부터 설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세 번째 관찰은 성전에서 명절에 그리스도의 설교들은 순수한 복음적인 설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설교를 아주 기꺼이 들으려고 온 개종하지 않은 군중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요한 복음 7장에 이루어진 일이며 우리 주 예수님의 초기 사역의 시종일관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부흥의 시대이며 그리고 사람들은 와서 주님에 대하여 듣는 데에 말주변이 좋은 사람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주변이 좋아야하는 만하는 그 이상입니다. 어떤 때는 수 마일씩 그리고 이른 겨울 아침에 서서 첫 번 위대한 각성의 휫필드와 웨스레이와 호웰 해리스와 다른 설교자들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저의 네 번째 관철은 거기 18세기와 19세기 초기에 위대한 부흥회에는 "특별한 음악"이 없었습니다. 그 음악은 그들이 아주 자발적으로 불렀으며 어떤 종류의 음악 악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들의 허파의 상단에서 그들의 마음으로 노래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기억으로부터 되어졌으며 그것은 관찰되었으며 나중에 그것을 기록하였으며 그 말들은 가장 최대의 운동이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 항상 들었습니다.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의 어떤 노래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설교와 동행하는 같은 형태- 자발적으로, 마음으로부터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진정한 부흥의 시대에 진리입니다- 성가대들도 없고, 특별 음악도 없고- 오직 친숙한 찬송들, 새롭고 뜨거운 방법으로 부르는 노래,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들의 마음의 깊은 곳으로부터 부르는 찬양입니다.

그리고 나는 또한 꼭 말씀 드릴 것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과거의 위대한 부흥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더더욱 적게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요한 복음 7장에서 그리스도의 설교하시는 동안에 일어나 일 중에 노래하는 것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노래와 음악이 현대 예배 시간에 적어도 시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휫필드와 웨슬리가 설교할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간의 아주 진심에서 우러난 찬양은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분량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명언은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회중들의 찬양은 긴 것보다 훨씬 더욱 설교를 위해 사람들에게 준비하게 하여줍니다. 오래 걸리는 예배 의식은 설교자가 한 마디의 말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몽롱한 상태로 만듭니다." 말틴 로이드 존슨은 존경받는 진정한 부흥에 대한 전문가였습니다. 그 말하기를,

점점 더 많은 시간이 찬양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찬양 인도자'를 마치 새로운 종류의 직원처럼 교회에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찬양을 지휘하고 아마도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주 너무 많은 시간을 분위기 조성에 사용함으로 설교를 위한 분위기의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지(설교)의 전체 가치를 떨어뜨리는 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돌아선 것으로 마치 설교에 있어서 그녀가 등뒤로 돌아 선 것과 같습니다(말틴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존더번 출판사, 1981 재판, p. 17).

저는 또한 요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부흥 시대에 어떤 위대한 설교가들은 아무 찬양도 없었거나 아니면 아주 약간만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떠나서, 여러분에게 이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분명한 설교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기를 원합니다. 요한의 제 7장 기록에서 어떤 종류의 음악이나 또는 특별한 숫자의 성가대를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서서 설교하셨습니다. 설교가 주 행사였습니다. 실제로 그 행사는 주님이 야외에서 매우 능력있게 설교하셨습니다. 그 분 앞에 인쇄된 성경도 없었고, 한절 한절 주해도 없었고, 그 분이 설교하실 때에 아주 능력이 있었고 지구를 흔드는 설교들이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방법을 따른다면 우리의 예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가능할지, 그리고 우리 성가대를 줄이고 가장 특별한 숫자와 최고의 솔리스트로 줄이고 그리고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한 시간동안 부내면 - 예수님이 요한 복음 7장에서 설교하신 것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자, 우리는 우리의 본문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가 이 아침에 그것의 세 가지를 소유합니다. 제가 믿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으로부터 세 가지 본문은 우리에게 신학교에서 우리가 항상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복음적인 설교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저는 그 중에 몇 개를 졸업하였지만 거기서 복음적인 설교의 가치에 관하여 그렇게 많이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믿기는 우리는 어느 곳에서 배우는 것보다 요한 복음 17장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목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가진 젊은 청년들은 그는 그리스도 그의 주님이시고 스승이신 그리스도처럼 설교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피스씨가 조금 전에 찬양 한 것처럼,

오 당신처럼 되기를! 축복된 구세주,
이것이 나의 변함없는 갈망이고 기도이며;
즐거이 나는 모든 생애의 보물을 받칩니다,
예수님, 당신의 완전한 형상 입기 원하며
오 당신처럼 되기를! 오 당신처럼 닮기를,
축복된 구속주, 순결한 당신의 작품처럼
임하소서 당신의 감미로움, 임하소서 당신의 충만하심,
인 치소서 주님의 형상을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오 당신처럼 되기를" 토마스 키스홈, 1866-1960).

우리는 이 장에서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적 설교에 대하여 무엇을 배웠습니까? 모든 젊은 분들은 그리스도의 설교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그럼으로 그는 구세주처럼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에 대하여 세 가지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I. 첫째, 복음적인 설교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7:14-17절을 펴시고. 일어서서 그 소리로 네 절을 읽으십시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 복음 7:14-17).

다 앉으시고.

이것은 진정한 복음적 설교가 시작되어야 하는 방법이며,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신조를 배워서 선포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내시는 것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설교에 선명함이 있어야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요한 복음 7:19).

이것은 진정으로 선명한 교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적 설교가 시작해야하는 통찰력 있는 신조의 종류입니다. 복음적 설교는 시작에서 목이 긴 장갑을 내려놓고 그리고 영원한 형벌과 영원한 정죄 받을 인간 타락의 위대한 교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을 지키는 자가 너희 중에 없도다"(요한 복음 7:19). 이것이 신랄한 힐책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것처럼,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9-10).

아무도 자신의 공로와 선행으로 구원받기에 충분한 사람이 없습니다. 완전하게 당신을 구원할 만큼 "너희 중에는 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그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복음적 설교의 첫째 주제입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II. 두 번째, 복음적 설교들은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어서서 요한 복음 7장 27절을 읽읍시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요한 복음 7:28).

앉으시지요.

그 분이 소리쳤다는 것을 주목하여 봅시다. 그 말씀은 헬라원어에서 매우 강력합니다. 헬라어의 크라조-. "그 뜻은 비명을 지르다, 큰 소리로 부르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다, 부르짖다"(스트롱 #2896). 그 요소는 언제나 진정한 복음적 설교의 현재형입니다. 다른 때에는 이 말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사용하였습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한 복음 1:15).

그것은 바울 사도에 의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공회에서 외쳐 가로"(행 23:6)

다시 바울에 의하여 말하되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행 24:21)

"외치다"의 이 장면은 "소리치다" 조차도 사도 바울과 세례요한의 복음적 메시지에서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은 나사로를 향하여 외치셨으며 죽음으로부터 나오라 부르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요한 복음 11:43).

그래서 이 말씀은 몇 곳에 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이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에게 복음적인 설교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8:28에서 예수님은 "외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기는 이것은 오늘날 복음적 설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하는 요소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하여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가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물로 이것은 모두 아주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불완전한 삶을 산다고 진리가 아닙니까? 여러분이 죄성의 마음을 가졌다고 진리가 아닙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진리가 아닙니까? 그것은 아마 "부정적이 설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설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진정한 복음적 설교의 모델인 요한 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받아들이면 우리들은 이들 부정적인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며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에게 진정한 것입니다.

III. 세 번째, 복음적인 설교들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에게 나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일어서서 37절 말씀을 읽으십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한 복음 7:37).

앉으시지요. "외치다"는 말씀-크라조-- 비명, 큰 소리로 부르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다, 소리쳐 알리다"(스트롱 #2896)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요한 복음 11:43).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한 복음 7:37).

언제나 잃어버린 죄인들을 향하여 "외치다" - 그를 죽음으로부터 불러내며 그리스도에게로 그를 불러내는 요소가 있어야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는, 그의 위대한 책에서, 설교와 설교자에서, 말하기를,

사람이 감정이 없이 지옥에 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율법의 천둥소리를 감정이 없이 들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거꾸로, 사람이 정말 아무 감정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응시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상태는 완전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거역하는 감정의 표출과 사실상 진리를 끝까지 부인하는 상태로 자신들은 만드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하여 두려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의 모든 것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을 의미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행합니다. 인간 전체가 포함되었으며 복음은 개혁을 인도합니다; 그럼으로 저는 애절감과 감정의 요소로 말합니다. 이 존재의 영은 움직이며, 언제나 설교에 있어서 매우 현저한 것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존더번, 1971, 95쪽).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복음적 설교의 모델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여러분은 여러분이 타락한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이런 불안함이 있으십니까? 이런 목마름이 있으십니까? 용서함 받는 것을 열망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평안을 갈망하십니까? 여러분은 이것에 갈망하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그것이 복음적인 설교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그리스도가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오십시오. 주님의 보혈로 당신의 죄를 씻김을 받으십시오! 그 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십시오. 이 아침에 당신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자, 여러분 말하십시오, "만약 제가 그처럼 소리치고 설교하면 아무도 오늘날 듣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믿기는 그러면 여러분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왜 여러분이 틀렸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요한 복음 7장의 이 요절에서 그리스도의 설교에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어서셔서, 요한 복음 7:40-43의 마지막 내용을 읽으십시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요한 복음 7:40-41).

그리고 43절로 내려갑시다.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요한 복음 7:43).

이것을 기억하세요: 진정한 복음적인 설교는 언제나 "주님 때문에 구분되는 것"의 원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분은 오직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분을 믿고 구원받을 것입니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계속 그 분이 지정으로 구세주이신가 하고 의심할 것입니다. 이 아침에 당신은 어느 그룹에 속하십니까? 제가 기도하기는 여러분이 이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 이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사람들 중에 속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제가 기도하기는 여러분이 주님께 나와서 그 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고 -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께 나와서 구원받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설교 끝((END OF SERMON)
여러분은 Dr. 하이머스 목사님의 설교를 인터넷에서 매주 보실 수 있습니다.
www.rlhymersjr.com. 에서"Sermon Manuscripts." 을 크릭(Click on)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설교전의 성경 봉독은 크레잎톤 찬(Dr. Kreighton L. Chan)박사: 요한 복음 7:28-37).
설교전의 솔리스트 찬양은 벤자민 그리피스씨(Mr. Benjamin Kincaid Griffith):

"오 주님처럼 되기를": O To Be Like Thee (by Thomas O. Chisholm, 1866-1960).

설교 요약

그리스도로부터 배우는 복음적인 설교

로버트 하이머스 박사님의 설교( Dr. Robert Hymers)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한 복음 7:14, 19).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요한 복음 7:2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한 복음 7:37).

I.   첫째, 복음적인 설교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7:14-17, 19; 로마서 3:9-10

II.  두 번째, 복음적 설교들은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7:28; 1:15; 행 23:6; 24:21; 요한 복음 11:43.

III. 세 번째, 복음적인 설교들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에게 나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 7:37; 11:43; 7:40-41,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