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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눈물

THE TEARS OF THE SAVIOUR
(Korea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5년 10월 4, 주님의 날 아침,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Morning, October 4, 2015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최근 나는 어떤 목사님이 그의 교회 밖의 죄인들에게 난간을 부리는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지옥으로 간다”고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지옥의 불에서 평생 탈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비디오를 끄고 그가 한 말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마디의 친절한 말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랑의 말을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무리들에게 그렇게 설교한것을 생각할수 없었습니다. 네, 그는 거친말을했습니다. 네 그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갈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말들을서기관들 바리새인들에게 했습니다 – 거짓 종교의 지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목사님들이 모르몬교도 천주교 이슬람교 이단이나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소리치는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설교는 그리스도의 예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강한 꾸짖음은 우리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은 복음을 전하는것이 아니고 단지 종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플러 신학교에서 처럼 성경을 공격하고 돈을 위해서 그들은 자조 심리학을 위해서 설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부자가 될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교하고 “죄인의 기도”를 통해서 간단히 구원받을수 있는 설교를 합니다. 네! 나는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곳에 계셨다면 그는 이렇게 설교하셨을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들은 그는 오늘날 우리의 거짓 설교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위해서 남겨두신것입니다! – 일요일 저녁 예배를 닫고 성경공부를 구절구절 외우면서 설교하는 사람들 종교적이지만 일요일 아침에만 예배를 하는 사람들과 록 음악을 교회로 가지고 오는 사람들입니다 – 그리고 전도적인 설교를없애고 – 그들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피가 없고 이것은 사람들의 죄를 씻겨주는데 더이상 없는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테이블을 넘겨 이렇게 말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네, 나는 그리스도께서 오늘날의 거짓 선생들과 거짓 설교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설교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온 자들에게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그는 한 여성에게 비록 결혼을 5번하고 간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 여자에게 부드럽게 말햇습니다. 그는 병에 걸려서 죽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마태복음 14:36). 간음을 하는 여성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1). 십자가에서 그의 옆에 있던 도둑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43).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2). 그의 발에 키스한 죄진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누가복음 7:48).

예수님께서 웃은적이 있습니까? 아마 그랬을것이지만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이 성경말씀에서 그는 3번 울었고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그의 성격임을 알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열정이 없는 부처가 이렇게 울었다는 상상을 하기가 힘듭니다 – 로마의 신들도 이런 상상을 하기 힘들고, 이슬람의 차가운 알라도 이렇게 눈물을 흘린것을 상상할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그의 마음이 사람들의 고통을 위한 연민이란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내가 윈스턴 처칠에 대한 아주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세계 제 2차 대전때 영국이 그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모를수 있습니다.

St. Paul's Cathedral
세인트 폴 성당, 런던, 폭격 중

여러분들은 유세프 칼쉬에 의해 찍혀진 그의 얼굴을 볼수있습니다. 그러나 런던의 히틀러의 폭탄으로 파괴된 긴 세월동안의 세월입니다. 이 시절 사람들은 그를 다르게 보았습니다. 폭겸의 밤 이후 그들은 집으로 눈물을 흘리며 다 돌아갔습니다.

Sir Winston Churchill
런던의 폭격중 처칠.

그는 그 전날밤 40명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죽은 파괴된 쉼터에 잠시 멈췄습니다. 처칠이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닥으며 있을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군중들은 “우리는 당신이 올줄 알았습니다!”라고 말햇습니다. 어느 나이든 여성은 “보십시요. 그는 우리를 걱정합니다. 그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히틀러는 그들의 집과 도시를 폭탄으로 파괴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파괴시키지 못했습니다. 처칠의 눈물은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나치의 전쟁을 이길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파괴된 거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그들의 양식의 씨앗을 기다리며 줄을 서있는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무서움에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고통받는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칠은 기독교인이라고 기록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인이였던 부모 에베레스트 처럼 감정을 느끼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녀의 사진은 그가 죽었을 당시까지 그의 방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의 감정을 갖고 오늘날의 어느 지도자 보다 더욱 기독교 인 같았습니다. 나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 또는 블라디미르 푸틴 또는 버락 오바마가 사람들의 고통으로 인해서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상상을 할수가 없습니다. 연민은 기독교의 기본입니다 – 일세기때 예수님께서 차가운 로마의 세계에 가르치신것입니다,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슬픔의 사람” 이런이름입니다,
   이곳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입니다,
죄인들을 구하사!
   할렐루야! 구세주오셨네!
(“Hallelujah, What a Saviour!” by Philip P. Bliss, 1838-1876).

성경말씀에서 예수님께서 3번 우셨습니다.

I. 첫번째, 예수님께서는 도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는 어느날 아침 나귀를 타고 예수살렘으로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따랐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부렀습니다(마태복음 21:9).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종려주일”입니다.

The Triumphal Entry
예수님의 “종려 주일”

그러나 우리는 이날 어떻게 끝났는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누가복음 19:41).

Dr. W. A. Criswell는 내가 들어본 위대한 설교자 중 한명입니다. 그는 달라스의 제일 침례교회의 목사님으로 60년을 넘게 섬기셨습니다. 그의 설교중 Dr. Criswell은 큰 도시의 목사님으로 있는 분에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순서가 되었을때 그는 없었습니다.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창문가에 서있는 그를 오피스에서 찾았고 그는 빈민가 지역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쪽을 향해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목사님에게, ‘목사님 사람들이 설교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답하시길, ‘나는 희망없는 사람들의 모슴을 보면서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냥 좀 보십시요. 보십시요’ – 그는 도시를 향해서 손가락으로 가르켯습니다. 장로님은, ‘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도 익숙해 질것입니다. 지금은 설교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나서 Dr. Criswe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두려워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익숙해 집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 무엇입니까? 그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 무엇입니까? 이것은 결국 우리가 익숙해 지고 –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그리스도와 다릅니다. ‘가까이 오고 성을 보시고 우시며.’” (W. A. Criswell, Ph.D., The Compassionate Christ, Crescendo Book Publications, 1976, p. 58).

예수님은 그날 올리브 산에 서서 예루살렘의 도시를 보았을때 누가 이 도시가 40년 후에 없어질것으로 생각했습니까? 누가 로마 장군 디도의 한 세대후에 군대가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울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아무것도 남은것은 없고 성전의 돌의 일부분만 남았을뿐입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셧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도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셧습니다.

어떤사람은 “그러나 목사님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봅니다. 우리는 모든사람들을 구원할수 는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 조차 구원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사람들을 구원할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요일과 목요일 전도하는 날에 오십시요. 여러분들은 토요일도 전도하러 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가서 주일 오후에도 전도할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어느날 도시의 거리들은 파편과 연기와 피와 죽음으로 가득할것입니다. 어느날 누군가 구원하기 너무 늦은 날이 올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십자가의 병사로 나가서 양을 따라가십시요. 지금 이시간 가난한 사람을 돕고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그리스도께 전도하고, 용서를 받고, 희망을 찾을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요! “가까이 오고 성을 보시고 우시며.”

II. 두번째, 예수님께서는 동정심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죽었습니다” (요한복음 11:11, 14). 그는 “내가 그를 깨우겟다” – 이것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신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사로의 집인 베다니에 가신것입니다. 이 교도는 “묘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들은 “무덤”이라고 합니다 – 이것은 그리스어로 자는 곳, 예수님께서 그들을 깨우기 전까지 죽은 사람들이 자는곳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위해서 한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4일을 기다리시고 기적을 보여주셔서 믿음을 주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가고 계십니다. 마리아, 나사로의 여동생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요한복음 11:33).

그리스어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슴이 상하시고 아주 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ĕmbrimaŏmai) – 아주 깊게 혼란하고 마치 깊은 바다의 파도처럼 깊은 고통을 말합니다 (tarassō). 여러분들의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을때 이런기분을 느껴본적이 있습니까? 나는 있습니다. 나는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깊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끓는 물처럼 힘들었습니다. 나는 내 생에 몇번 이러한 큰 고통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느끼신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할머니Mom Flowers가 돌아가셨을때 이렇게 느꼈습니다. 나는 자유분방한 남가주 침례신학대학에 다닐때 이런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나의 어머니Cecelia가 돌아가셨을때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슬픔을 보여주시고 이러한 슬픔을 느끼는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는 마리아와 마사의 슬픔을 느끼시고 그가 죽은것에 대해 슬퍼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그가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킬수 있다는것을 알고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셨고 이러한 슬픔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리고 2절 후 요한복음 11장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을 보게 됩니다. 그는 비록 슬펐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그리고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

그는 마리아와 마사의 슬픔을 같이 나누시고 그의 형제인 나사로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같이 나누십니다. 나는 젊은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낍니다. 그들은 많은 교회들에서 오래된 찬송가를 더이상 부르지 않습니다 –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영혼을 편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어린 아이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문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찬송가들은 어두운 시절 나를 밝은 빛으로 밝혀줬습니다.

죄 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어찌 좋은 특권인지
   하나님께 모두기도드리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믿음의 친구를 찾을수 있을까,
   우리의 슬픔을 누구와 나눌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한점을 아시고,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해 주시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by Joseph Scriven, 1819-1886).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

예수님의 귀하신 눈물입니다. 예수님의 열정이십니다. 예수님의 동정심에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Dr. Henry M. McGowan은 내가 소년이였을때 나를 처음으로 침례교회에 식구들과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나에게 마치 내가 그의 아들같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가족들과 나는 텍사스 주에 그를 보러 몇번 갔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나에게 작은 시를 적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메리 스티븐슨이라는 소녀가 14때 쓴 시였습니다:

어느날밤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나의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걸어갔습니다.
건너편 어두운 하늘에 불이 비취면서 나의 인생이 보였습니다.
그 장면에 나는 두가지의 장면이 모래에 찍힌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나의 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나의 주님의 것이였습니다.

내가 나의 인생의 마지막을 보기 바로전에,
모래에 찍힌 장면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나는 나의 삶에서 많은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낮고 슬픈 때가 보였습니다,
이것은 모래에 찍힌 한가지 장면이였습니다.

나는 이것으로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이것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이길을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삶에서 아주 슾프고 문제가 많은 시절들을 보았습니다이것은 오직 한가지의 장면에만 있었습니다나는 왜 내가 주님이 가장 많이 필요할때 나를 떠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속삭이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떠난적이 없다.
절때, 너가 힘들어 할때 너를 떠난적이 없다.
너는 한가지의 장면만 보았다
이때 바로 내가 너를 옮긴것이다.”
   (“Footprints in the Sand” by Mary Stevenson, 1922-1999; written in 1936).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도시를 보시며 우십니다 – 이것은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계시고 우십니다 – 우리가 슬픔의 시대를 격고 있습니다.

III. 세번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돌에 맞으실때 우리를 위해서 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을 말씀하십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5:7).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전 겟사마네 동산에서 우신것입니다.

겟사마니의 고통은 무슨뜻입니까? 그는 그의 기도중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고통을 받으실때, 선지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죄의 희생감으로 만드셨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고통을 보시고 죄의 희생양으로 만족해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우리의 죄를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죄를 그는 짊어지시고 그는 큰 소리로 우시며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ibid., p. 6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크게 우시며 겟사마네에서 그는 그의 몸을 우리의 죄를 위해서 그 다음 아침에 십자가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 그리고 그는 그의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셨습니다. 크게 우시며 그는 우리의 죄의 모든 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셨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끝없는 슬픔,
   나의구세주 그리스도 걸어가시고, 걱정과 근심이 함께 하네;
죄인들의 죽음을 싶자가 앞에 보시고,
   그는 우리들의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셨네.
거룩하신 구세주! 거룩하신 구세주!
   갈보리 나무에 그는 내가 지금 보네;
죄인들을 대신해서 상처입고 피나셨네 –
   맹인과 주의를 기우리지 않는 나를 위해서 죽으셨네!
(“거룩하신 구세주” by Avis Burgeson Christiansen, 1895-1985).

나는 여러분들에게 우리를 위해서 많은 눈물을 흘리시고 그의 피를 십자가에서 쏟아 부으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 주사 그를 믿으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천국에 계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그에게 간단한 믿음으로 와서 구원받으십시요. 그의 보혈로 여러분을 죄에서 깨끗히 해줄것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것입니다. 아멘. Dr. Chan기도 해주십시요.


이 설교가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었다면 Dr. Hymers께서 알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이 Dr. Hymers에게 이멜을 쓸때 어느 나라에서 쓰는지 알려주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답장을 해줄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설교가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었다면 Dr. Hymers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말씀해 주십시요– rlhymersjr@sbcglobal.net (이곳을 클릭하십시요). 이멜을 쓰실때 어느 나라에서 이멜을 보내시는지 꼭 알려 주십시요. 여러분들은 Dr. Hymers에게 영어 외에 어떤 언어로도 쓰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가능하시면 영어로 써주십시요. 만약 우편물로Dr. Hymers에게 보내고 싶다면 그의 주소는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입니다. 여러분들은 또한 그에게(818)352-0452로 전화하실수 있습니다.

(설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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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Dr. Hymers 에게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로 이메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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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의 대본에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누구나Dr. Hymers의 허락이 없이 설교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r. Hymers의 모든 비디오 메시지는 저작권이
있으며 허락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Mr. Abel Prudhomme의 설교전 읽으신 성경: 누가복음 22:39-44.
Mr. Benjamin Kincaid Griffith께서 설교전 독창하신 찬송가:
“Blessed Redeemer” (by Avis Burgeson Christiansen, 1895-1985).


설교요약

구세주의 눈물

THE TEARS OF THE SAVIOUR

by Dr. R. L. Hymers, Jr.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마태복음 23:13, 25, 27, 33; 14:36; 요한복음 8:11;
누가복음 23:43; 마태복음 9:2; 누가복음 7:48)

I.    첫번째, 예수님께서는 도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1:9; 누가복음 19:41.

II.   두번째, 예수님께서는 동정심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11, 14, 33, 35.

III.  세번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돌에 맞으실때 우리를 위해서 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7; 누가복음 22:44; 요한복음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