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Sermon

이 설교 원고는www.sermonsfortheworld.com 을 통해서 매달 215개 이상의 국가들과 약 116,000대의 컴퓨터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YouTube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로 시청하고 있으나 그들은YouTube을 통해서 우리 교회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YouTube을 통해서 사람들이 우리 웹사이트로 오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34개의 언어로 통역되어 수천명의 사람들이 매달 보고 있습니다. 설교 원고는 제작권이 없음으로 우리의 허가 없이 설교자들은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매달 기부금을 통해서 우리가 무슬림과 힌두교 국가들도 포함한 전세계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시길 원하시면 이곳을 클릭하시길 바랍니다.

Dr. Hymers에게 편지를 쓰실때는 어느곳에 거주 하는지 함께 알려 주십시요. Dr. Hymers의 이메일 주소는rlhymersjr@sbcglobal.net 입니다.




왜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한 진실의 답변!

(부흥에 대한 설교 10번째)
WHY NO REVIVAL? THE TRUE ANSWER!
(SERMON NUMBER 10 ON REVIVAL)
(Korea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4년 10월 5일 , 주님의 날 저녁, 로스엔젤레스 테버네클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A sermon preached at the Baptist Tabernacle of Los Angeles
Lord's Day Evening, October 5, 2014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호세아 5:6).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호세아 5:15).


호세야의 5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를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스코필드 성경의 앞의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교만과 죄때문에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미국과 언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는 이 세상의 언약 있지만 다른 나라들과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주목하십시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의 사람들에게 죄와 교만때문에 떠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린다면 미국이나 다른 서양세계의 나라들에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Dr. J. Vernon McGee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미국에 있는 우리들에게 심판을 하시는것이 느껴지는 것이 나의 인식입니다… 우리는 그의 심판이 우리에게 오고 이스라엘처럼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J. Vernon McGee, Th.D., Thru the Bible, volume III, Thomas Nelson Publishers, 1982, p. 633; 호세아 5:2대한 노트).

지금 성경구절을 다시 보십시요,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호세아 5:15).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나라를 처벌하시고 그들을 떠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떠나] 내 곳으로 돌아가서…” 위대한 청교도 해설자인Jeremiah Burroughs (1600-1646)는 이 성경구절에 이렇게 해설합니다,

‘내가 내곳으로 돌아가서’ 이것은 내가 천국으로 다시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죄하면서 나는 천국으로 갈것이고 나는 거기에 앉아서… 마치 그들이 안그런것처럼’ (Jeremiah Burroughs, An Exposition of the Prophecy of 호세아,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06, p. 305; note on 호세아 5:15).

나는 우리가 서양세계에 100년이 넘도록 부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이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여러분들은 반대하면서 나는 단시 선교자고 여러분들의 주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위대하 설교자인Dr. Martyn Lloyd-Jones를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교회가 광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것을 아십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1830년도나 1840년도 전의 교회 역사에 대해서 읽으신다면 매 10년마다 정기적으로 부흥이 있었던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1859년 이훙에 대 부흥이 한번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불모의 기간을 지내왔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믿음을 잃고 그 대신 철학과 지혜및 학습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상 긴 불모의 기간을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광야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믿지 마십시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D. Martyn Lloyd-Jones, M.D., Revival, 1987, Crossway Books, p. 129).

여기서 여러분들은 볼수 있습니다. 나는 작은 선교자지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 3명중의 한명이 한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우리에게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1859년 이후에 대 부흥이 한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1830년이나 1840년도에는… 정귀적인 부흥이 10년마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ibid.).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부흥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믐 지난 과거를 1830년도와 1840년도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 전에 우리 교회들은 10년마다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후에는 – 1859년 이후에 딱 한번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830년도와 1840년도에 하나님께서 “떠나셨음” (호세아 5:6)을 하게한것과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호세아 5:15)한것이 무엇인지 봐야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복음주의의 기독교 역사를 알고 있다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찰스 피니! 그가 바로 그 원인입니다! Dr. William G. McLoughlin, Jr.는 역사학 박사로써 다음을 썼습니다,

그는 미국의 부흥운동에 새로운 시대를 취임햇다… 그는 전도 과정과 그의 전체적인 철학을 변화 시켰다 (William G. McLoughlin, Jr., Ph.D., Modern Revivalism: Charles G. Finney to Billy Graham, The Ronald Press, 1959, p. 11).

피니 전에는 부흥은 하나님께서 오는것이라고 목사님들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이 다시 태어나는것도 하나님께서 오는 기적이라고 믿었습니다. 1735년도에Jonathan Edwards는 부흥을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1835년도에 피니는 부흥은 “기적이 아니다. 이것은 구성원들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결과의 철학적인 결과이다.” 이것은 바로 “부흥은 기적이 아니고, 이것은 오직 어떤 수단을 이용한 자연적인 결과라고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영어로 그가 말한것입니다.

Jonathan Edwards와 피니의 다른점은Edwards는 개신교이고 피니는 이단이자, 펠라기우스파, 즉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하는것이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할수 있다고 믿는것입니다. 피니는 감리교같은 알미니안이 아니였습니다. 피니의 믿음은 알미니안의 초기 감리교하고는 달랐습니다. 피니의 유명한 설교중 하나는, “죄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스스로 바꿀수 있다” (1831) 입니다. 하나님께서 밀리시고 사람이 그의 힘으로 사람의 결심으로 인해서 본인 스스로 다시 태어날수 잇다는 것입니다. 피니전의 감리교는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Iain H. Murray는 피니의 생각이 초기의 감리교가 아닌 나 다니엘 테일러와 같은 뉴 잉글랜드 자유주의자에서 온것이라고 말했습니다(Iain H. Murray, Revival and Revivalism, Banner of Truth, 2009 edition, pp. 259-261). 감리교인들은 “죄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직접 바꿀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George Smith는 그의 책History of Wesleyan Methodism에서 부흥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부흥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적으로 넓은 보급과 더 큰 강도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것으로 다른것입니다 (George Smith, Revival, volume 2, 1858, p. 617).

초기 감리교의 부흥과 다시 태어남에 대한 설명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피니의 거짓 정의가 유명해 지고 하나님을 그림에서 빼놓기 전에 개신교나 침례교 교단에 의해서 주어진것일수도 있습니다. 피니후, 사람들은 그들이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Revelation 3:17). 피니이후, 그들은 하나님께서 “떠나신”것 조차도 모르고 “그의 자리고 돌아가신것”도 모릅니다.

George Smith의 말을 인용하면 초기의 감리교인들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것과 부흥이 오로직 하나님의 성령님의 은혜로만 되는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피니가 복음주의를 파괴하기전에 개신교와 침례교인들이 믿었던 것입니다. 오래된 교파일수록 피니의 펠라기우스파 (Pelagianist) 같은것과는 거리가 멀고 피니의 생각인 “죄인들은 그의 마음을 본인이 바꿀수 있다는”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습니까? 나는 7년동안이나 시도했었습니다! 이것은 이루어 질수 없습니다. 나는 경험상 이것을 압니다!

피니는 자신의 의지로 인해여 “그 자리에서” 구원받을수 있고 죄인들이 그들의 결정을 할수 있다고 제단 통화를 도입한 사람입니다. Dr. McLoughlin박사님이 말한것처럼 피니는 “전도의 철학과 과정을 변형시킨사람”입니다(ibid.). 오늘날 많은 전도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사람의 행위로써 손을 들고 “죄인의 기도”를 하거나 교회 앞으로 나가서 “결정하는 시간”을 가지면 구원받을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결정주의”는 펠라기우스파 이단주의 자인 찰스 피니의 가르침에서 직접온것입니다!

결정주의는 빠르게 인기를 얻고 이것은 “훨씬 쉽고 빠르게”사람들에게 받아졌습니다. 여려분들은 더이상 성령님께서 죄의 인식을 주실때 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 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피니는 이러한 복음주의를 새로운 “기독교인”들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기독교 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와 침례교를 파멸시킨것입니다! “자유주의 자들의” 매번 이렇게 빨리 결정내리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자유주의 자들이 온것입니다!

Iain H. Murray는 “사람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생각은 빨리 퍼져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성령님의 능력도 없어진 것이다. 이것은 피니의 신학에서 직접 초래된 결과이다” (Revival and Revivalism, Banner of Truth, 1994, pp. 412-13).

“빠르고 쉬운”방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것은 우리의 개신교와 침례교의 교회들을 구원받지 못한사람들로 가득차게 했습니다. 지금 많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침례교회에 있고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은 주일 밤의 예배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아는 목사님의 아내에게 왜 남편이 주일 밤 예배를 닫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그들은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교회들이 “결정주의”로 인한 구원받지 못한사람들로 가득차있어서 오게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세요! 오래된 성경적인 구원받는 방법없이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흥을 보내셔야 합니다. 결정주의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람을 왕위에 놓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호세아 5:15).

이것이 바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부흥을 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정주의는 아무도 겸손하게 만들수 없습니다. 죄인은 “앞으로”나가면서 마치 용감하고 용기있는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눈물도 보지 못하고 슬픔도 없고 양심의 가책도 없으며 죄를 알지도 못합니다. 나의 아내와 나는 2004년도 11월달 빌리 그래함의 마지막 십자군의 모임에서 사람들이 웃으며 “앞으로”나가고 서로 얘기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피니 전의 예전의 부흥에서 볼수있는것과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1814년도에 감리교의 모임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십시요.

그 다음 밤, 또 다른 모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죄 의식에 싸여서 슬퍼하고 그들의 영혼이 고통받고 있었으며, [오랜동안] 기도를 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젊으 사람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방문하시고 그들의 죄를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Paul G. Cook, Fire From Heaven, EP Books, 2009, p. 79).

여러분들은 “죄책감에 빠져서 억압”당한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영혼이 고통을” 당한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피난처를”찾았습니까? Brian H. Edwards목사님은 다음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끔찍한 죄의 의식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통제가 되지 않을정도로 울고.. 그러나 죄 의식의 눈물과 슬픔없이는 부흥올수 없습니다… 아주 깊고 불편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죄책감 없이는 부흥이 올수 없습니다… [1906년의 부흥을]목격한 한 기자가 말했습니다: “내 주변의 땅들은 마치 영혼이 자비를 위해 울부어 짖는 전쟁터같았다” (Brian H. Edwards, Revival: A People Saturated With God, Evangelical Press, 1991 edition, pp. 115, 116).

여러분들중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을수 있는지 “배우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배울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듯이 경험 해야 하는것이고 느껴야 하는것이고 여러분에게 꼭 일어나서 알게되는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신의 구원을 위한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되는것이 여러분들이 죄에 대한 의식을 하는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울어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4).

Dr. Lloyd-Jones은 이것이 바로 죄의식을 받은 죄인의 울부짖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 나는 그와 동의 합니다! 나는 이것은 나의 눈으로 직접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님을 부흥에 보내셨습니다.

제일 중국 침례교회에서 1960년도 후반에 부흥이 왔을때, Dr. Timothy Lin께서는 다음 찬송가를 매일 불렸습니다,

“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139:23, 24, expanded).

같이 서서 이 찬송가를 부릅시다. 이것은 찬송가 8번에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마음의 깊은 죄 의식을 느낄때 이것을 마음으로 부를수 있고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히 씻길수 있습니다! Dr. Chan기도해 주십시요.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Dr. Hymers 에게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로 이메일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혹은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으로 우편을
보내주세요. 혹은 (818)352-0452으로 전화를 주셔도 좋습니다.

이 설교의 대본에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누구나Dr. Hymers의 허락이 없이 설교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r. Hymers의 모든 비디오 메시지는 저작권이
있으며 허락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Mr. Abel Prudhomme께서 설교전 봉독하신 성경말씀: 호세아 5:6-15.
Mr. Benjamin Kincaid Griffith께서 부르신 찬송가:
“O For a Closer Walk With God” (by William Cowper, 1731-1800).